<데스크칼럼>一線을 뛰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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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천북구청 공무원들의 세금횡령사건에 이어「지존파」와 온보현(溫保鉉)의 엽기범죄,육사출신장교등의 탈영소동이 겹쳐 한해 가운데 가장 풍성하다는 추석연휴 뒤끝 시정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일련의 사건은 물론 별개의 것이다.그 의미나 파장도 같지는 않다.그러나 모두가 정상을 크게 벗어나 시민들에게 불안과 충격을 안겼고 극단의 돌출사안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사회가 안고있는 문제의 표출이며 재발을 막기위한 종합적인 처 방이 필요하다는 데서는 상통한다.
사건후 정부는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았다.지방세정의 혁신,하위공직자의 재산등록,하위직을 중심으로한 사정활동 강화,방송프로그램을 비롯한 사회환경의 정화,유해.변태업소 단속,치안태세의 재점검,군기쇄신등 정부의 처방은 모두가 필요한 것이 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들은 썩 미덥지가 못한 표정들이다.개혁의 대상이면서도 또 그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하위직 공무원.경찰.군하급장교등「당사자」들의 반응도 별로 탐탁지 않아 보인다.우리 사회가 그동안 너무 많이 충격적인 사건과 상황 을 경험하면서 길러진 자극내성(耐性)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 사실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일이 있을 때마다 비슷한 처방을 되풀이 제시해왔다.정부의 다짐과 약속대로라면 진작 해결이 되었어야만 할 과제들이 오히려 더 복잡하게 얽혀 숙제가 되어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대응을 되풀이하다 보 니 감명이 사라지고 아무리 강조를 해도 말에 무게가 실리지않는 지경에까지이르게됐다.
만일 정부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선공직사회의 구조화된 부패와 복지부동을 시정하고 민생치안을 확보하며 무너진 군기를 바로세우겠다고 정말 팔을 걷어붙였다면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 제시했던 원론적인 처방을 다시 강조하기 보다 백번 타당한 그런 처방들이 왜 실제에서 제대로 집행되지도,효험을 내지도 못했는가를 엄밀히 분석하고 그 개선책을 찾는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는 한동안 법석을 피우다 흐지부지되고 마는 과거의행태를 이번에도 벗어날수 없고 머잖아 또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은 지존파.온보현 사건에서 문제로 지적된 우범환경 정화를 위해 전국에서 일제 단속을 펴고있다.그렇지만 현장의 상황은 단속을 지시한 상층의「결연한 의지」와는 차이가 있다.동원된 경찰관들에겐 상층의 그런 의지가 없는 것이다.
단속의 대상인 상인들은 또 그런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시늉으로라도 당연히 겁을 내고 숨어야할 불법영업자들이『단속 한두번 당합니까』하는 자세로 공공연히 영업을 계속하는 형편이다. 10대 소년으로 상경해 30여년 각고의 노력끝에 이제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큰 이발소 주인이 된 金모씨에게는 지론아닌 지론이 있다.
『퇴폐이발소가 오래 전부터 문제지만 관할 구청.경찰서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없어집니다.단속하는 시늉만하니까 해결이 안되는 것이지요.문민정부 들어서고 좀 달라지나 했지만 아니예요.좀더 교묘한 방법으로 돕고 돕는 공생관계가 여전합 니다.오히려 단위만 커졌어요.아마도 퇴폐이발소는 없어지기 어려울 것으로봅니다.』 ***현장士氣 올려줘야 金씨의 단언이 속단이었음을 정부는 이번엔 실증해 보여야만 한다.
일선 현장의 요원들이 상층과 마찬가지 의지와 집념을 갖고 업무를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열쇠가 있다.
야단을 치고 지시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그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해 보이는 것이「진짜 대책」이고 지금 정부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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