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한국 상공의 언어장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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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회의장에서 한국인의 모습을 자주 지켜본 한 외국인이 한국인을「3S」로 표현한 적이 있다.말이 없고(silent),시선이 마주치면 슬며시 웃고(smile),그냥 두면 꾸벅꾸벅 존다(sleeping)는 의미다.「토론문화」의 바탕이 약한데다 언어장벽이 대화를 막기 때문이다.
외국의 대학 강의실에서도 한국학생들은 질문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미국 학생사회에서「아시안 조」(Asian Joe)라는말이 유행한다.「지 아이 조」처럼「조」는 미국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이다.수학.과학 점수는 좋지만 일반과목에는 약하고 발표력이 없는 아시아 학생의 표준형을 말한다.우리 영어교 육의 슬픈 현주소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에 취업중인 90명의 외국인 조종사들이『한국 상공의 안전비행에 가장 위험한 적(敵)으로 언어장벽을 꼽고 있다』는 4일字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는 실로 충격적이다.얼마전 제주공항 착륙사고도 한국인 부조종사와의 언어장벽이 한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아시아나항공에서 18개월 동안 일하다 미국항공사로 자리를 옮긴 어느 조종사는『한국 상공에서의 비행은 에어쇼와 같다.한국인들은 모두 한국말만 해 상황을 제대로 전하기 어렵다.
화(禍)를 입을 기회는 허다하다』고 했다.
외국인 조종사는 20%에 이른다.정부는 지상관제탑과의 교신을위해 한국인 부조종사의 동승을 법으로 의무화했다.문제는 이들 부조종사의 영어가 초보단계여서 의사소통이 어렵다는데 있다고 한다.영어가 통하는 경우에도 한국적 권위주의 문화 때문에 상사에게 질문을 삼가고 서로가 알아야 할 정보도 스스로 얘기 하지 않는 경향이라고 했다.
워싱턴의 국제항공승객협회가 작년에 조사한 1백만회 비행당 치명적 사고율은 한국이 5.2로 인도및 파키스탄 수준이다.북미(北美)는 0.26,중남미(中南美)도 1.65였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영어수준이 특히 낮다』고 이들은 주장한다.제주공항 착륙때 캐나다인 조종사가 다같이 건드리지 말라는 뜻인『get off』대신『don't touch』라고 바꿔 말했어도 상황은 나았을 것이라는 풀이도 따른다.
영어는 국제항공언어다.운항중의 언어장벽은 곧 치명적 사고와 직결된다.외국인 조종사들의 얘기가 과장임을 믿고 싶다.「국제화시대의 선진 한국」이라는 말이 조금은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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