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중앙일보 現代史 바로 세우자 기획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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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오늘날 민중사학은 단순히 역사학계 내부의 특수「진보」사관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그것은 민중사학의 생성배경을 보면 알 수있다.지난 10여년동안 운동권에서는 이른바 민중노선을 표방하면서 급진적인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해 왔는데,민중사 학은 바로 거기서 우러나온 분비물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에 기여함을 목표로 한다는 매력적인구호 아래 민중운동의 지하수 파기에 열중하고 있는 민중사학론자들은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을 당면한 필수적인 과제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민중사학이란 민중에 대하여 연구하 는 것이 아니라,민중과 더불어 연구하는 역사학이다.실제로 그들은 현재 진행중인 민중운동과 강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다.그들은 현단계 한국사회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라는 두개의 요소로 응결되어 있다고진단하면서 한국사회의 총체적 성격을 新植民地半(신식민지반)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민중사학론자들이 역사변혁운동의 주체라고 내세우고 있는민중이란 노동자.농민 등 생산대중을 가리키는 다분히 계급적 개념이다.그들은 민중이란 용어가 80년대 민중운동에서 얻은 귀중한「성과물」이라고 자부한다.그들에 의하면 역사적 진실이란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검증된다고 한다.
이같은 주의 주장으로 볼 때 민중사학은 그 본질에 있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그들이 역점을 두고 있는 민중운동사연구에서 극명하게드러난다.철저하게 反외세,反자본주의적인 시각에서 한국현대사를 평가하고 있는 민중사학론자들은 근대화論내지 근대주의에 대해 신경질적인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들에 의하면 자본주의화를 최고 가치로 설정하고 있는 서구의근대화론은 본질적으로 현대 제국주의의 신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그들은 한국의 근대화가 하필이면 자본주의로 귀결되었던 데 대하여 비판한 다.마침 금년은 東學(동학)혁명운동 1백주년을 맞아 교계나 언론계.학술단체에서 각종 기념행사를 열고 있는데,민중사학론자들은 이를「甲午(갑오)농민전쟁」이라 명명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자주적인 근대화를 달성하려고 한 민족운동의 최고봉이었다 고 그 역사적 의의를 극대화하고 있다.나아가 그것이 실패로 돌아감으로해서 자본주의 이외의 근대화의 길,곧 프롤레타리아혁명에 의한 사회주의 체제 성립 가능성을 영영 놓쳐버리고 말았다고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최근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세계 양대진영간의 체제경쟁은 이미 판가름난 상태다.그럼에도 불구하고민중사학론자들은 사회주의정권의 붕괴가 결코 자본주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오히려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연계되어 있는 한국의 경제구조가 기본적인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성 학계로서는 민중사학론자들이 변혁운동의 대열에서 뛰쳐나와역사 속에서 민중의 정서를 발견한다거나 혹은 그 구체적인 생활史를 탐구하는 민중사관 본연의 자세로 복귀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될 때 진정 한국현대사 연구와 서술은 한 층 더 인간적인 체취를 풍기게 되고 동시에 생동감을 더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서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민중사학은 그 생성과정에서 볼때 80년대 민중운동의 한 부산물이다.
그런데 최근 중.고교 국사교과서에 적용할 교육내용 전개「준거안」에 민중운동적 시각에서의 현대사 용어 변경 움직임이 있었던것이라든지,혹은 대학 교양교재로 사용된『한국사회의 이해』가 역시 민중적 시각에서 기술된 점,혹은 주사파논쟁에 서 볼 수 있듯 우리사회 한쪽에는 아직도 80년대 후반을 휩쓴「민중노선」에의한 사회변혁의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민중사학의 문제는 운동권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미망에서 깨어날 때 저절로 극복의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무엇보다도 脫냉전시대를 헤쳐나갈 공동체 번영의 정치이념 창출에 적극 매진할 필요가있다. 그것은 동시에 앞으로 닥쳐올 통일에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도표(道標)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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