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제록스의 X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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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록스(Xerox)는 희랍어「xeros」(건조하다)에서 유래한다.기름종이에 냄새나는 젖은 잉크로 찍어내는 것이 왕년의 복사였다.「건조한 복사기」를 창안한 핼로이드社가 61년 회사이름을 「제록스」로 정하자 발음부터가 어렵다며 반대가 심했다.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이름이 어렵다고 쉬운 이름으로 바꾸라는 종용을 받았다.
『내 음악을 들으면 내 이름을 익히게 될 것』이라고 그는 일축했다.창업주의 한사람인 윌슨 역시『제품을 보면 우리회사 이름을 금방 익히게 될 것』이라고 고집했다.
제록스는 브랜드를 넘어「복사」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다.70년 복사기 시장 점유율은 95%였다.그러나 82년 13%로 곤두박질쳤고 80년대 내내 사경을 헤맸다.「로 엔드」(저기술)시장은 캐논과 미놀타.미타등이 석권했다.1분당 속도 가 45장이상인 중급및「하이 엔드」(고기술)제품에서 명맥을 유지중이지만 IBM과 코닥.캐논의 추격은 집요하다.인쇄명령 키만 누르면 몇십장씩이고 찍혀나오는 컴퓨터화 시대에 복사기산업 자체의 장래마저 갈수록 불안하다.
제록스는 새 로고와 함께「다큐먼트 회사」로 재탄생을 선언했다.서류나 차트.그래프.사진등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모두「다큐먼트」로 정의한다.
새 제품으로 고속 디지털 인쇄를 선보였다.전화선을 타고 오는모든 정보를 받아 이를「조립」하고 인쇄해낸다.「다큐먼트 고속도로」창출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다.새 로고 「X」의 오른쪽 윗부분은 점선으로 끊겼다.「디지털화 X」의 상징이 란다.
실리콘 밸리 중심부 제록스의 팔로 알토 연구센터(PARC)는손꼽히는 기술혁신센터중 하나다.세계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도,컴퓨터 사용자가 마우스를 움직이며 부호나 심벌로 컴퓨터와 대화하는 「인터페이스」(interface)도 이곳에서 개발됐다.
제록스는 복사기에 너무 치중,그들 연구진이 개발한 여타기술의상품화를 게을리했다.애플의 창업귀재 스티브 잡이 이곳을 견학중「인터페이스」를 곁눈으로 보고 돌아가 매킨토시의 마우스시대를 열었다.현대 기술혁신史에 한 웃음거리다.제■스「 기술혼(技術魂)」의 한(恨)풀이가 두고 볼 만하다.
〈本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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