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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학로 살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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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 현대 건축의 개척자인 김수근의 대표작 중에는 붉은 벽돌 건물이 많다. 지난해 20주기 추모 행사에서도 ‘건축은 빛과 벽돌이 빚어낸 한 편의 시’라는 그의 말을 후학들은 회고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 마로니에 교정이 1975년 관악구의 황량한 벌판으로 이전한 뒤 빈 자리엔 문화동네를 건설하자는 ‘동숭동 프로젝트’가 싹텄다. 혼을 불어넣은 붉은색 명품 건물들로 김수근은 초석을 다졌다. 아르코 미술관, 아르코 예술극장, 샘터사옥 같은 조형미 뛰어난 건물 7동은 초창기 동숭동의 풍광을 확 바꿔 버렸다. 이화 네거리에서 혜화 로터리까지 1.2km 폭 40m의 6차선 도로가 ‘대학로’로 명명된 것은 85년의 일이다.

붉은 벽돌 때문에 대학로를 좋아하게 됐다는 이들이 오랜만에, 그곳에 가 보고 실망하곤 한다.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란 말이 무색하게 삭막하다. 유서 깊은 난다랑과 오감도·바로크 레코드 자리에는 맥도날드·스타벅스 같은 외국계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의 울긋불긋한 간판이 들어찬 지 오래다. 아기자기했던 골목마다 콘크리트 건물에 주점·음식점의 상혼이 넘친다. 대학로 최후의 다방 학림의 자그마한 간판이 애처롭게 보인다.

대학로 공연장 수는 100개가 넘지만 손님이 늘 줄을 서는 모습은 딱 세 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개그콘서트가 열리는 코미디 소극장, 미국계 대형 도너츠 체인점 크리스피 크림의 판매대, ‘지하철 1호선’이 무대에 오르는 학전이다. 그나마 학전처럼 13년째 입석까지 채우는 장기 히트 공연이 있다는 게 대견하면서도 신기하다는 게 현지 연극인들의 푸념이다.

대학로 인근에 소극장들이 더러 생기는 혜화동 같은 곳을 ‘오프 대학로’라고들 한다. 하지만 오프 브로드웨이 같은 발전적 확장인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엑소더스 인지 헷갈린다.

서울시가 최근 ‘동숭동 부활 프로젝트’ 추진에 나섰다. 혜화역 옆에 서울연극센터를 개관한 데 이어 공연장을 확충하고 디자인 거리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다만 인사동에 이어 2004년 서울의 두 번째 문화지구로까지 지정된 대학로 사정이 악화 일로라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벽돌 예찬론자였던 김수근은 “실용과 예술성을 두루 담는 게 건축인데 벽돌이 그에 걸맞은 소재”라고 여겼다. 문화예술과 상업주의의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어 가는 대학로에, 붉은 벽돌에 밴 김수근의 숨결이 필요한 때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