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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중산층 붕괴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의 로버트 라이시 노동부장관은 하버드大교수 출신으로서 클린턴 경제정책의 이론적 지주(支柱)가 돼 온 사람이다.그가 지난 5일 노동절을 맞아 중산층의 붕괴에 관해 강연한 게 있다.
그는 강연에서 과거 중산층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3개 그룹으로 재편되고 있는 추세를 지적했다.그 첫째 그룹은 하부계층(언더 클라스)이다.경제의 본류(本流)에서 소외돼 도심 빈민가에 발이 묶이는 사람들이다.둘째 그룹은 상부계층(오버 클라스)이다.이들은 새로운 세상변화의 물결에 성공적으로 올라탄 사람들이다. 세번째인 중간계층은 불확정 그룹이다.이들은 자칫하면 언제라도 하부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전문지식.고도기술.
컴퓨터 등 첨단기능의 보유여부가 갈림길이다.그러나 이같은 기술과 지식은 교육과 훈련의 대가를 통해서만 습득된다.
이 때문에 도태와 낙오가 늘어나고 그 추락속도가 빨라질 것이다.다시 말하자면 컴퓨터 등 첨단기기.지식의 등장으로 사회탈락현상이 두드러지고 그 규모만큼 하층민이 새로 증가하는 것이다.
기술.지식발전이 불러온「신판 빈민가(게토)」를 방황 하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우리나라에서 근년에 부쩍 유행하는 여론조사들에서 보면「자칭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다.여론조사마다 중산층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대개 70%이상씩으로 나타난다.그러나 이들이 진정 모두 중산층의 위치를 안정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 일까.
개인들의 경제적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수입과 보유재산이다.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중에 부동산.증권.채권 등 재산이 많은 사람은 문제가 없다.그리고 재산은 많지 않더라도 의사.변호사.일류 운동선수.기업체 간부 등 지식. 기술이 우수하거나 운 좋은 사람도 괜찮다.그러나 재산도 없고 지식.기술도없이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확보하는 근로자들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하다.당장은 생업이 확보돼 있고 수입이 보장돼 있다고 해서 곧 중산층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일종의 환상일 수 있다.오히려 우리나라 교육.산업시스템의 미비 때문에 사회의 도태.낙오자 비율과 그의 확대 가능성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요즘 세태를 개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대학에 들어가면 주사파(主思派)가 되고 대학에 못들어가면 지존파(至尊派)가 된다』는웃지 못할 우스갯 소리가 오가고 있다.최근 中央日報 여론조사에따르면 주사파 발생원인이「富의 불균형 등 구조 적 모순(28.
2%)」「민주화 부진(23.6%)」때문으로 지적됐다.말하자면 경제.정치적 불균형이 문제라는 것이다.사회적 병리(病理)현상이나타날 때마다「불균형」에 대한 지적이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심지어 엽기살인범들마저「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가진 자들」에 대한 울분 운운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국면과 관련해 요새 학자.전문가.평론가들은 일제히『그들은 정신이상자들일 뿐이다』『그들의 범행이 불균형에 대한 항거로 인식돼서는 안된다』『시급한 것은 인성(人性)을회복하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모두 옳은 말 이고 당연한 얘기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시 지적돼야 할 점은 산업사회의 급속한 변화로부터 낙오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수립문제다.이들 낙오자에대한 우리사회의 방치상태는 위험선을 넘은지 오래다.중.고교 중퇴자를 예로 들어보자.천인공노(天人共怒)할 범죄 를 저지른 자들이 중퇴자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 학업탈락자가 결국 사회발전과정에서 도태 가능성이 비교적 크기 때문이다.물론 어느 부문에서든 중도탈락이 전혀 생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 같은 낙오자를 무대책으로 발생시키 고 무작정 내버려두는 사회체제는 곤란하다.
***체계적 대비가 필요 학교는 중도에 탈락하는 학생이 생길때 그냥 교문 밖으로 내보내는 것만으로 끝이다.그리고 이들 낙오자를 맡아 사회와 연결해줄 기관.단체.민간조직도 없는 실정이다.기업은 일정수준의 기술과 지식을 이미 갖추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교육. 훈련기회를 집중할 뿐 낙오자에 대해선 기여하는 게없다.지금까지 우리는 경쟁의 선두주자들에게만 관심을 집중해왔다.그리고 나름대로 상당한 효과와 성공을 거두었다.이제부터는 낙오.탈락자에게도 신경을 써야 할 때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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