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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보다 '행동'을 공약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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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해방 이후 교육개혁이란 구호가 대통령 국정지표의 하나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다. 그때부터 모두 다섯 명의 대통령이 저마다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곤 대통령이 직접 교육개혁을 챙기겠다며 저마다 멋진(?) 이름의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기구를 설치했다.

이렇게 4반세기가 지났지만, 교육은 정말 얼마나 개혁됐는가. 물론 자질구레한 몇 가지들은 바로 고쳐졌지만, 교육개혁은 항상 원점에서 맴돌았고 크게 개혁된 것은 없었다.

개혁은커녕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빠지지 않았는가. 학생 실력은 전반적으로 더 떨어졌고, 학교의 인간성 교육은 실종되고, 사교육과의 경쟁에 내몰린 공교육은 패멸 일로에 서게 되지 않았는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동안 교육개혁에서 한국 교육의 목표나 방향은 수없이 개발되고 축적되어 왔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정치인들은 모두 교육에서 ‘무엇’(What)을 이루겠다고 수많은 공약을 해 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한낱 속임수적 과대광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을 ‘어떻게’(How) 이루겠는가를 구체적인 표현으로 약속하지 않았고, 약속했다 해도 실천하지 못했기에 교육개혁은 물거품이 됐다.

이번 대선에서도 예외는 아닐 듯싶다. 표심을 잡기 위한 장밋빛 구호에 국민들은 신물을 느낀다. 정말 부탁이다. ‘무엇’ 보다는 ‘어떻게’ 이루겠다는 약속을 해 주길 바란다. 더 이상 교육개혁이 실패하지 않도록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의 진정한 전문성을 보장하겠다고 구체적인 행동을 공약하라. 어린이집 교사로부터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교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신장하고, 어떻게 보장할지를 공약해 주기 바란다.

둘째 교육을 정치에 예속시키지 않겠다고 공약하라. 지난날 표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허무맹랑한 약속을 남발하고, 수없는 폐해를 초래했는가. 교육이 정치적 야심이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셋째 교육부 장관을 제대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하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교육의 ‘교’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소신을 가졌던 사람, 근본적인 교육철학이 비뚤어졌던 사람, 장관하기 위해 자기가 평소 가졌던 올곧은 철학을 초개처럼 버린 사람, 이런 사람들이 교대로 교육부 수장이 되었기에 그때마다 한국 교육은 혼란과 후회를 겪었던 것이다.

넷째 교육, 특히 대학교육에 대해 간섭은 최소한, 지원은 최대화하겠다는 약속을 하라. 대학의 자율을 어떻게 극대화시키고, 또 주어진 자율을 남용·악용했을 때에는 어떻게 그 책임을 철저하게 묻겠는지 약속을 해라.

다섯째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을 어떻게 살려내겠다는지 구체적인 실천행동을 약속하라. 그저 사교육 폐해를 지적하고 그 접근을 차단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사교육과 차별화된 공교육을 어떻게 해 나가겠다는 공약을 밝혀라. 어떻게든 성적을 올리겠다는 시장주의적 목표를 갖고 있는 사교육과 달리 사람을 만들겠다는 공교육 본래의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끝으로, 제발이지 교육 실패의 책임을 학부모에게 떠넘기지 말라. 국민은 죄가 없다. 국민의 교육열이 과잉으로 치달아서 문제가 되는 것처럼 몰아가선 안 된다. 왜 정부는 자꾸만 국민의 교육적 열망을 잘못 건드려 이상한 방향으로 분출하게 만들었는가.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해라.

이성호 연세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