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야구천재 이종범 94MV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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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마침내 이종범(李鍾範.24.해태)이 한국프로야구 정상에 우뚝섰다. 「옆방」에 살던 김기태(金杞泰.25.쌍방울)의 유니폼이부러워 야구를 시작한지 15년.이종범은 30일 프로야구기자단 투표에서 94시즌 MVP로 뽑힌 것이다.
학교가 끝나도 집에 갈줄 모르고 운동장에 남아 부러움 속에 야구부의 훈련모습을 바라보던 꼬마가 드디어 한국야구계 전체의 부러움을 받는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이종범의 야구인생은 여러 가구가 함께 세들어 살던 집에 서림국민학교 야구선수인 김기태가 이사오면서 시작됐다.
멋진 유니폼의 김기태는 국교에 이어 중.고교 2년선배로 언제나 이종범의 우상.수업이 끝나도 운동장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기태형」의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수없이 꾸지람을 들었지만 언제나 그때 뿐.운동을 반대했던 아버지 이계준(李啓準)씨도 결국 국민학교 3학년짜리 아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그뿐 아니라 일단 야구선수가 되는 것을 허락하자 열렬한 후원자가 돼 곧바로 「천재 만 들기」에 들어갔다. 야구에는 문외한이었으나 이른 새벽 이종범을 깨워 아침운동을 시켰고,운동을 다녀온 뒤엔 마주앉아 어렵게 구한『과학하는 야구』라는 일본 책을 번역해가며 읽어주었다.
이때부터 이종범은 충장중→광주일고→건국대를 거치는 동안 단 한번도 후보선수가 된 적이 없다.
고3때 청소년대표로 뽑히더니 건국대 1학년때부터는 부동의 국가대표 유격수로 이름을 떨쳤다.
각종 대회에서 받아 집에 보관하고 있는 트로피와 상패만도 50여개에 이르는등 좌절과 실패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실패라고 해봐야 지난해 신인왕 투표에서 삼성 양준혁(梁埈赫)에게 뒤져 2위에 그친 것이 유일하다.그러나 그나마도 곧바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한국시리즈 MVP에 올라 빚을 갚았다.
더욱이 올해 MVP투표에선 15년전 그렇게 부러워하던 「기태형」도 눌러 이겼다.이제 남은 목표는 최소한 38세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것.
「유니폼만 입어 봐도 소원이 없겠다」던 이종범은 자신의 야구는 이제부터 또다른 출발점에 섰다고 말한다.정상에 오르는데 걸린 시간만큼 정상에 머무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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