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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잘 나가는 그 분, 혹 양복 입은 독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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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
폴 바비악, 로버트 D 헤어 지음,
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
466쪽, 1만4800원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 하이테크 기업에 어느 날 ‘데이브’라는 이름의 인물이 입사 면접을 치르러 온다. 남성 패션잡지의 화보에 나올 법한 세련된 양복 차림에 매력적인 미소, 유려한 말 솜씨, 자신감 넘치는 태도, 세 가지 전공을 이수한 화려한 학력, 전문적 실무경험. 그야말로 어느 회사나 탐낼 만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 자리에서 채용이 결정되고 유망주로서 회사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는데….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치명적 매력’일 줄이야.

입사 순간부터 그는 속임수로 동료의 업적을 가로채고 거짓말로 직속상사를 곤경에 빠뜨리며 화려한 언변으로 묵묵히 일하는 선한 동료와 상사를 밀어낸다. 학력과 경력 역시 조작된 것이었다. 회사의 앞날은 ‘안 봐도 비디오’다. 문제는 그 지경까지 몰려도 회사는 그가 독소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데이브는 가상 캐릭터지만 그런 인물은 분명 현실 속에 존재하며 그런 존재가 곧 저자들이 말하는 ‘사이코패스(Psycopath)다.

산업심리학자인 바비악과 범죄심리학자 헤어, 두 사람이 제시하는 사이코패스의 일반적 특성은 이렇다. “인간관계가 피상적이고 허풍을 떨며 사람을 속인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동정심이 없으며 책임감도 없다. 충동적이며 장기적 삶의 목표가 없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다.”

이런 파탄적 인격은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에게나 어울릴 법하지만 범죄현장보다 오히려 기업에 더 많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책의 원제가 『Snakes in Suits(양복 입은 독사)』인 것도 그 때문이다(원제를 살리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특히 사이코패스는 동료·선배를 제치고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리는 엘리트 사원이나 전도양양한 임원인 경우가 많다. 장차 이사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은 200여 명을 대상으로 진단한 결과 3.5%가 사이코패스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질 것이다. 조직 내에서 갈등과 마찰을 일으킬 게 분명할 그런 인물이 한두 해라면 몰라도 어찌 장기적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저자들이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도 그 부분이다. 역설적이지만 사이코패스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곳은 “고위험-고수익 구조의 조직, 현대적이고 개방적이며 유연한 조직 체계를 갖춘 기업조직”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서 기업들은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고 따라서 구성원에 대한 조직적 통제가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 틈을 사이코패스가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업 조직 안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게 쉬워진데다 흔히 혜성처럼 나타나 9회 말 역전 위기에 몰린 팀을 살려낼 ‘특급 소방수’로 평가 받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강력한 카리스마와 자기 확신을 가진 리더십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가상인물을 등장시킨 소설적 구조와 풍부한 사례와 과학적 접근을 통한 분석, 두 줄기가 교차하는 독특한 구성의 이 책은 외모와 언변, 가짜 학력을 무기로 각계의 중심자리를 차지했다가 조직을 위태롭게 만들었던 인물들로 시끄러웠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 크다. 내가 다니는 직장 속의 사이코패스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덤이다.

글=이훈범 논설위원 ,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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