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기업의 원高대응 체질개선으로 뚫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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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2차 원고(高)시대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올해 들어 원화의 평가절상(平價切上)은 1.1%에 지나지 않으나 대미환율(對美換率)이 8백원대를 넘어섰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 원고 시대라 부르기 시작하는 것 같다.마치 주가지수가 1천포인트를 다시 넘었기 때문에 고주가(高株價)시대로 보는 것과 같다.그러나 주가지수가 1천포인트에 도달한 것은 이미 5년전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제자리를 찾은 것이지 주가가 오른 것은 아닌 것이다. 대미 환율도 89년 당시 6백 70원이었으니 대비 시점에 따라서는 도리어 19% 평가절하됐다고 봐야겠다.
경상수지(經常收支)흑자가 시작된 86년부터 89년까지 4년간이 제1차 원고 시대였다.이 4년 사이에 27%의 원화절상이 있었다.이 때는 소위 3저현상에 힘입어 수출은 늘고 원유수입대금이나 외채(外債)이자지급이 줄어 경상수지흑자가 날 때였다.
지금은 수출입의 경쟁력에서 보다는 자본거래에서 외화자금이 유입(流入)되어 원화값어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93년 이후 일본의 엔화가 달러대비 25% 절상되었기 때문에한국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이 괄목할만큼 높아질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엔화의 평가절상에도 불구하고 수출증가율보다 수입증가율이더욱 커졌기 때문에 경상수지흑자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일본에서 수입하는 기계류나 부품값의 55%가 엔화표시로 돼있고 원자재의 국제가가 치솟았기 때문에 수입 평균단가는 1년 사이에 7.8% 올랐다.
앞으로 외환자유화의 폭이나 자본시장 대외개방도가 커짐에 따라한국기업의 해외자금조달과 외국인투자로 자본유입은 더욱 많아질 수 밖에 없다.따라서 환율이 외환시장의 수급에 의해서 결정되는자유변동환율(自由變動換率)시스템이 유지되는한 달러대비 원화가 평가절상되지 않을 수 없다.원화가 평가절상 궤도에 들어서면 국내외간 금리차이 뿐만 아니라 환차익(換差益)도 보장되므로 자본유입의 인센티브는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원화값은 상승하는 거시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국내기업 모두에 나쁜 것은 아니다.
수출업자에게는 커다란 타격이 되겠지만 내수판매업자나 달러 부채가 많은 기업엔 도리어 도움이 될 것이다.
내수판매하는 제지.정유업체 등은 영업이익이 늘고,달러표시외채가 많은 항공사.종 합상사는 환차익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수출업자는 원고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원가절감 이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다.선물환(先物換)시장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외환리스크를 외환시장 메커니즘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비록 선물환시장이 발달돼 있다고 하더라도 원화의 평가절상「추세」에 대해선 대응방안이 없다.
단지 비정상적인,즉 시장에서의 환율절상기대치와 괴리현상에 따른 리스크만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많은 사람들이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파생(派生)시장의 선물.옵션.스와프기법들을 활용하는 길 밖에 없다.
달러베이스로 수출하는 기업은 달러베이스로 원자재를 수입해서 통화별 현금흐름을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또 달러표시 차입금을 많이 조달하여 원화수입금의 감소를 원화지급금의 감소로 대응토록하고 수출시장도 일본이나 유럽등 강세통화권으 로 다변화해야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체질을 개선,경영효율을 높이는 것이 왕도인 것이다.
일본기업들은 80년대 후반 달러대비 엔화가 1백% 절상되는 엔고를 경영합리화를 통해 기업내부에서 흡수하고 지금은 1천2백억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실현하고 있다.
금리수준을 낮추어 기업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강력히 노력해야되겠지만 원高현상을 정부의 정책변수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기업의 타성도 없앨 때가 된 것이다.지금은 89년에 비하면 원高가 아니라 원低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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