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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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치권에서 유류세 인하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미 발표된 등유 가격 인하안을 새로운 내용처럼 발표해 빈축을 사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7일 브리핑을 통해 L당 23원이 붙는 등유 판매부과금을 내년 1월부터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관련법이 통과되는 대로 등유 특별소비세도 내리겠다(L당 134→90원)고 덧붙였다. 예산처는 특소세에 연동되는 교육세·부가가치세 인하 효과까지 감안하면 이번 조치로 등유 소비자가격이 L당 80원가량 떨어진다고 밝혔다. 연간 1000L의 등유를 사용하는 가정은 난방비 8만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산처 이승철 산업정보재정과장은 “등유는 저소득층의 대표적인 난방 연료지만 상대적으로 LNG 도시가스에 비해 가격이 비싸 형평성 문제가 있었다”며 가격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내용을 재탕한 것이다. 특소세 인하는 올 8월 말 재경부가 발표한 ‘2007년 세제개편안’, 등유 판매 부담금 폐지는 올 7월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에 각각 포함돼 현재 법안 심사가 진행 중이거나 이미 입법 예고까지 돼 있는 상태다.

 기획예산처의 이런 재탕 발표를 놓고 관련 부처마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나라 살림을 짜는 예산처가 저소득층의 난방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재탕 발표한 것은 생색내기의 극치”라며 “국민이 어떻게 볼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이날 정치권 등이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LPG 프로판가스의 특소세(L당 40원) 폐지에 대해선 ‘검토 중’이라며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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