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광주 노래한 "오월시" 9년만에 同人集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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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80년 5월 광주의 절망과 상처를 처음으로 시로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80년대를 지배한 민중문학의 뿌리가 됐던 시동인 오월시가 이달말 9년만에 다시 동인집을 낸다. 오월시는 광주항쟁 직후 절대폭력데 대한 체험과 살아 남았다는 원죄의식을 공유한 이영진.박주관.곽재구.박몽구.김진경.나종영등이 모여 만든 시동인으로 나중에 나해철.최주석.윤재철.고광헌.강형철등이 가담했다 이들 동인은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등의 잡지마저 폐간돼 언로가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 다섯차례(81~85년)동인지를내놓음으로써 광주를 문학적 대상으로 삼은 『시와 경제』『삶의 문학』『분단시대』등의 동인지가 터져 나오도록 물 꼬를 텄다.
이후 이들은 사회운동이 활성화된 85년 『이제 더 이상 상처를 하는 작업은 끝났다.모순을 잉태한 사회의 환부로 가자』고 선언하며 무크지 『민중교육』을 발간하는등 각기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9년의 시간이 흐른뒤에 내놓는 동인지가 이번에 나오는6집 『그리움이 끝나면 길 떠날 수 있을까』(푸른나무刊)다.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거나/그런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네/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끝없는 사막을 묵묵히 가리키겠네/섣부른 위로의 말은 하지 않겠네/오히려 옛 문명의 폐허처럼/모래 구릉의 여기저기에/앙상히 남은 짐승의 유골 을 보여주겠네//….』(김진경 『낙타』) 『붉은 단풍잎처럼 얇아서/디뎌 밟으면/바스라질 무엇이 거기 있다/그때 쯤이면/꼭 무엇이든가 디뎌 밟으면/떠나는 것이 있다/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을/견디어 낸다는 것일까/견디어 낼수록/그렇게 되어가는 것일까/….』(나해철 『내 마음의 가을』) 10명의 동인들이 각각 10여편의 시를 싣고 있는 이번 동인지는 광주이후 동인마다 달라진 개인적인 색채를 분명히 보여주면서도 저변의 정조는 하나의바탕색을 이루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그 정조는 『낙타』에서 선명하게 보여지듯 80년 대가 제시했던 비전이 실패로 끝났음을 시인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승복하기도 어려운 세월을 견디는 시적 치열함이다.
동인지 서문에서 이들은 『무협지의 결말처럼 하루 아침에 민중시나 노동문학을 폐기한 쪽이나 아무 변화없이 목청을 높이는 쪽그 어디에서도 문학적 진정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미래의 전망을 향한 행동의 치열성에서부 터 미학적 지향의 치열성까지 시의 폭과 깊이를 검증받고 싶었다』고 동인지 재발간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박몽구를 제외하면 「오월시」의 동인들은 사회변혁운동과는 상관없는 문학주의자들이었다.80년대에도 역사와 문학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며 민중시의 문학적 품격을 유지하는데 기여해 왔다.
이 때문에 이번 동인지의 재발간은 이념의 후유증과 상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혼돈을 겪고 있는 현재의 시단에 하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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