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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순례>16.대취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초립 위에 작우 꽂고 누른 철릭 남전대에 명금삼성 한 연후에 고동이 세번 울리며 군악이 일어나니 엄위한 나발이며 애원한 호적이라 정기는 표표하고 금고는 당당하다…』 이석래의『풍속가사집』에 실린 「한양가」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대취타 연주광경이다.
황금색 철릭에 푸른 남전대,깃털 꽂힌 초립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취고수와 세악수(細樂手)들이 어가의 길을 트는「취타대」의장엄한 음률은 우리 음악이 대부분 식물성 음색을 지닌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이단적일만큼 남성적이다.고취악으로 통칭되는 취타대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상당한 양식상의 변화를 거쳐왔고 현재 전해지는 곡으로는『대취타』『취타』『길군악』『길타령』『별우조타령』등이 있다.
이중 『대취타』는 원래 궁중의 선전관청과 각 영문에 소속된 취타대가 임금의 성문밖 행차나 군대의 행진에 맞춰 연주하던 음악으로 일명 무령지곡(武寧之曲),속칭 군악(軍樂)으로 부른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행렬 앞쪽을 전부고취(前部鼓吹) ,뒤쪽을 후부고취라 칭하고 각각의 담당악사를 취고수와 세악사로 구분하고 있다. 사용악기는 징.용고.자바라 등의 타악기와 나발.나각등 취악기,그리고 선율악기인 태평소등 서역에서 수입돼 토착화된 악기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게 특징.
조선시대에는 적게는 50여명,많게는 1백여명의 악사로 구성됐지만 요즘은 기본편성으로 태평소.나발.나각.북.징 등을 각기 2명의 악사가 맡는 정도로 축소돼 겨우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회화사의 중요한 자료로 꼽히는 「정조대왕수원능행도」는 바로 조선시대 대취타의 위용을 아주 선명히 보여주는 음악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5공(共)시절 이후 오랫동안 청와대 접견실에 이를 모사한 작품이 걸려 있었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서더니 능행을 이유로 민심을살폈던 정조의 속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병사들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철거해버려 아쉬움을 남겼다.
대취타 역시 사물놀이와 마찬가지로 실제 연주가 아니면 흥취를맛보기 어렵지만 요즘은 국군의 날 행사나,청와대 외빈행사,그리고 가끔 열리는 국립국악원 연주 외에는 듣기가 쉽지 않다.
음반으로는 LP판으로 제작된 한국전통음악전집 제9집(지구레코드),그리고 현대음반이 출시한 카세트에 국립국악원 연주분이 실려있다. 〈鄭淵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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