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風 진실 밝혀야" 여론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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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YS)전 대통령이 결단의 순간에 내몰리고 있다. 1995년 신한국당 총장이었던 강삼재 의원이 지난 6일 재판에서 "안풍(安風)자금을 YS에게서 받았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사건 재수사에 들어갔고 YS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화투쟁가.야당 총재.대통령의 오랜 정치 역정에서 YS는 진실과 부정(不正)에 대해 여러 언행을 남겼다. 그 자취를 돌이켜보고, 또 앞쪽으로 이어 보면 YS는 안풍사건의 진실을 공개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1979년 10월 4일 의원직 제명=유신 독재정권은 9개항을 들어 신민당 총재이던 YS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력을 주문해 사대주의 언동을 했다는 것 등이다.

제명당한 후 YS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쳤다. 무엇보다 진실이 중요하며, 무엇으로도 진실을 막을 수는 없다는 '대도(大道)'의 선언이었다. 이 말은 그 후 '민주화의 용자(勇者)' YS를 상징하게 됐다.

YS는 이틀 후 기자회견에선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것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6월 10일~26일 민주항쟁=이 시절 YS는 민주화 세력의 대장군이었다. 또 다른 대장군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은 가택 연금을 당하고 있었다.

6월 10일 서울 무교동 민추협 사무실에서 YS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출정식을 열었다.

YS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당일 노태우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뽑은 민정당 정권에 날아가 꽂혔다. YS가 연설할 때 강삼재 민추협 상임운영위원도 "김영삼"을 외쳤다. YS는 "국민의 진실을 외면하는 민정당 정권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고 규탄했다.

26일 독재 타도 평화 대행진을 이끌면서 YS는 선언했다. "오늘의 행진이 온 국민이 희망과 즐거움 속에 살 수 있는 마지막 행진이 되기를 바란다." 이 발언은 YS의 지향점이 국민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1995년 11~12월 전두환.노태우 구속=11월 16일 盧전대통령이 2천2백58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12월 3일엔 全전대통령이 감옥에 갔다.

盧씨가 구속된 다음날, YS는 방문 중인 일본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역사에서 되풀이돼서는 안 되는 불행한 사건이다."

그러면서 YS는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을 정치 개혁의 초석으로 평가했다. "이번 사건을 정경 유착을 단절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이다." YS는 "이런 부정부패가 은폐되거나 용납되지 않을 만큼 한국 사회는 달라졌다"고도 했다.

강삼재 전 총장의 법정 폭로에 따르면 이 무렵 YS는 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姜의원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이른바 안풍자금을 집중적으로 건네고 있었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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