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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서울마라톤] ‘질주 본능’… 근육통도 막지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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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마라톤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팔에 깁스를 한 이도 한데 어울려 가을의 축제를 즐긴다. 타악 퍼포먼스 그룹 ‘한울림’은 지친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달리면서 마시는 한 모금의 생수는 멋진 그림을 선사한다. [사진=김경빈·김상선·김성룡 기자]

중앙서울마라톤에 참석한 귀빈들이 출발 버튼을 누른 뒤 참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방선희 대한육상경기연맹 사회체육위원, 김영순 송파구청장, 조영주 KTF사장, 김창범 덕화스포츠 대표, 송필호 중앙일보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박병원 우리금융그룹 회장, 신필렬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권태정 일간스포츠 부사장, 탤런트 유인촌씨. [사진=김태성 기자]

2년여의 방황을 딛고 중앙서울마라톤에서 화려하게 재기한 이은정이 고통을 참으며 골인하고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중앙서울마라톤에서 화려하게 재기한 ‘한국 여자마라톤의 희망’ 이은정(26·삼성전자).

4일 기록한 2시간29분32초는 올 시즌 여자부 최고기록일 뿐 아니라 국내 여자선수로는 2004년 3월 이후 3년 8개월 여 만에 나온 2시간20분대 기록이다. 그동안 여자 선수들의 기록은 2시간30분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이은정은 마라톤을 제외한 장거리 전 종목(5000m·1만m·하프마라톤)에서 한국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의 지존이다. 2005년 장거리 종목에서 연달아 한국기록을 갈아치우면서 ‘그랜드슬램’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이은정은 그해 말 도쿄국제여자마라톤에서 기권한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2006년 전주국제마라톤을 앞두고 “운동이 싫어졌다”며 러닝화를 벗었다. 마라톤에 대한 회의가 깊어졌고 1년 가까이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오인환 삼성전자 육상단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올해 초 훈련에 복귀한 이은정은 중국 쿤밍과 강원도 횡계 등을 오가며 피나는 훈련을 소화했다.

이은정은 이날 첫 5㎞를 17분25초에 끊어 권은주가 한국기록(2004년· 2시간26분12초)을 세울 당시의 같은 구간 기록(17분47초)를 22초나 앞당겼다. 두 번째 5㎞ 구간기록은 첫 구간보다 더 빠른 17분13초였다. 정확히 10년 만의 한국최고기록 수립에 대한 기대감으로 육상인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10㎞ 지점에서 찾아온 종아리 근육통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통증이 심해진 20㎞부터는 5㎞ 구간기록이 17분대 후반으로 후퇴했다. 이은정은 악전고투 끝에 완주했고 마침내 2시간20분대 기록과 함께 대회신기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질주 본능 앞에 방황의 세월도, 근육통도 힘을 쓰지 못하고 물러났다.

“너무 아파 기권할 생각도 했지만 포기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달렸어요.”

 잠실종합운동장에 골인한 뒤에는 걷지도 못한 채 한동안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신동재 기자, 사진=김경빈·김상선·김성룡·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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