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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신료를 인상하려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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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7면

나는 KBS 수신료가 싸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동안 국민소득은 서너 배쯤 늘었는데 수신료는 월 2500원으로 제자리를 지켰다. 영국이나 독일·일본 등 공영방송제를 유지하는 나라들에 비해서도 우리의 수신료는 매우 저렴하다. 따라서 나는 수신료 인상에는 찬성이다. 월 4000원보다 더 올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조건 찬성은 아니다. 현재의 KBS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KBS는 모양은 공영이지만 운영은 관영에 가깝다. 아니 청와대와 교감이 밀접해 대통령 방송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다. 많은 시민이 시청료 인상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시청료 인상을 찬성하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전기요금과 함께 부과되는 시청료 징수 방식은 분리고지로 되돌려야 한다. 전기와 TV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상품이다. 1980년대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의 결과 징수율이 50%대로 떨어지자 시청료를 전기요금 고지서에 결합시켜 KBS는 징수효율을 크게 올렸다. 그러나 이는 시청자 주권을 존중하는 제도가 아니다. 공영방송이 정권의 방송도, 상업방송도 아니라면 주인인 시청자가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표현의 창구를 막아놓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그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할 방법이 없다. 다시 말하면, 시청료 인상은 시청자들이 시청료를 선택적으로 낼 권리를 돌려받는 제도의 개선과 함께 추진해야 명분이 선다는 뜻이다. 그래야 KBS 직원들도 프로그램 제작에 청와대나 정치권의 입김이 아니라 시청자의 눈길을 더 의식하게 될 것이다.

둘째 조건은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의 투명성 강화다. KBS는 시청료 인상안의 토론과 의결과정에서 KBS이사회와 방송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이사회와 방송위원회는 모두 각계의 인사가 시청자를 대표해 공영방송의 운영에 관련된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KBS 이사나 방송위원의 발언 내용은 실명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를 보더라도 누가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결정에 찬성·반대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KBS이사회나 방송위원회는 공영방송에 관한 한 최고의 의결기관들이다. 개별 이사나 위원들은 모두 시청자의 권익을 대표해 그에 맞는 대우를 받는 만큼, 모든 주요 결정에 대해 당당하게 실명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마지막 조건은 KBS 구성원의 윤리적 성숙이다. 어찌 보면 이 조건이 가장 어렵다. 이 조건은 직원의 처신 등과 관련된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의 문제부터 프로그램의 정파성까지를 포괄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KBS 노조원이 국회 앞에 가서 시청률 인상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는 일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공영방송은 방송내용을 통해 시청자의 평가를 받는다. 자신들의 의사표시는 방송의 품질로 하면 된다. 이는 법관이 판결로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뉴스나 미디어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언론사들만 선택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도 공영방송뿐 아니라 저널리즘의 기본 윤리를 무시하는 일이다. 뉴욕 타임스의 미디어 담당 에디터인 부르스 헤드램 부장은 뉴욕 타임스가 자사에 관한 기사를 게재할 때 지키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워싱턴 포스트를 취재할 때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KBS의 타 언론사 보도에서는 이런 원칙이 지켜진다는 느낌을 갖기가 어렵다.
방송은 기본적으로 도덕적 기업이다. 전두환 정부 때 언론사 통폐합 과정의 일부로 시작한 한국의 공영방송 제도는 여전히 많은 결함을 갖고 있다. 바람직한 공영방송이 국민의 지지 속에 유지되려면 적어도 여기 제시한 기본적인 원칙 몇 가지는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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