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가슴’으로만 만든 정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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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7면

반값 아파트 공급 실패를 둘러싸고 책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법적 준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했다”, “주택공사가 택지조성비와 건축비를 과다 책정했다”는 등의 방법적 실패론에서부터 “태생부터 잘못된 사업”이라는 총체적 실패론 등 다양하다.

반값 아파트 정책이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에 지난해 처음 이 정책이 거론되기 시작할 때부터 필자는 여러 사람에게 문의를 받았다. 한 방송사에서는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그쪽의 주문은 싱가포르에 왜 부동산 투기가 없는지를 반값 아파트를 중심으로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싱가포르 모델을 거론하시는 분들이 뭔가 잘 모르고 얘기를 꺼내시는 것 같다”며 “일단 설명해 줄 테니 들어보고 제작팀과 다시 상의한 뒤 그래도 인터뷰가 필요하면 연락해 달라”고 했다. 필자가 말한 요지는 싱가포르에는 국유지가 80%이니까 정부가 원하는 대로 싼값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데 한국은 사유지를 매입해서 주택을 공급해야 하니까 싸게 공급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민간주택 부문은 투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투기 천국인 만큼 싱가포르 주택시장의 이중구조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이 방송사에서는 그 이후 인터뷰하자는 요청이 다시 오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분들과 얘기를 하다가 언론에 기고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중앙일보에 글을 실었다(2006년 12월 6일자, “싱가포르에 투기가 없다고?”). 그 후 다른 방송사에서 연락이 와서 결국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국회와 정부에서는 그냥 제 갈 길을 갔다. 필자가 보기에 반값 아파트 정책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첫째, 모델로 삼은 싱가포르의 실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들이 추진했다. 올해 9월 싱가포르의 부동산정책 담당관료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반값 아파트 관련으로 한국에서 방문객이 많았는지 물어봤다. 의외로 대답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방문하시는 분들이 싱가포르 부동산정책 결정의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부동산정책은 한국의 건설부에 해당하는 국가개발부(Ministry of National Development·MND)에서 최종 조율한다. 그리고 MND 산하에 있는 도시재개발청(Urban Redevelopment Authority·URA)에서 전반적인 도시계획과 민간주택시장을 관장하고, 주택개발청(Housing & Development Board·HDB)에서 공공주택 공급을 담당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은 MND나 URA는 제쳐놓고 ‘반값 아파트’ 공급책인 HDB만 줄곧 방문했다.

둘째, 수요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필자가 보기에 부동산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이 대부분의 국민에게 대단히 중요한 재산 형성 수단이기 때문이다. 살 곳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국민은 별로 많지 않다.

부동산정책 불만의 핵심은 따라서 “누구는 부동산으로 떼돈을 벌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이런 수요자들에게 아무리 반값이라 한들 값이 올라갈 전망이 없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셋째, 공급자의 능력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도시용지 중 공공 부문 보유 비율이 0.1%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절반 값에 주택을 공급하는가. 절반을 정부가 보조해주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규모의 보조금을 줄 재원도 없고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된다는 승인도 받지 못했다.

앨프리드 마셜은 경제학자의 덕목으로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강조했다. 반값 아파트 정책은 “뜨거운 가슴”만 가진 분들이 만든 대표적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국민에게 쓸데없는 기대만 부풀린 뒤 실망을 주고 정책과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만 가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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