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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해야 제 맛인 순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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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7면

“외국에 나가 있으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 많다고 하던데, 저는 정말 순대가 먹고 싶었어요.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장에 갔다가 먹었던 당면이 주로 들어간 순대가 제일 생각나더라고요.”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요즘이야 순대가 다양해져서 브랜드 순대까지 등장했지만, 그래도 당면순대가 가장 맛있다는 사람들이 많아. 모든 게 풍족하지 못한 시절, 시장 한쪽 찜통 위에 올려져 있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와 간·허파의 유혹이란 대단했지.”

“순대타운이라는 게 생겨서 완전히 달라졌지만, 예전에 신림시장 안 순대집의 등받이도 없는 긴 의자에 줄줄이 앉아 먹던 순대볶음 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인지 순대국밥은 시장이나 외진 곳에 있는 허름하고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식당에서 먹어야만 제 맛이 나는 것 같아. 서울 강남 순대집의 국밥은 맛으로 따지자면 뒤지지 않지만, 깔끔한 실내 분위기가 낯설어서 영 불편해.”

순대를 흔히 소시지와 비교한다. 가축의 창자를 이용하고 그 가축의 고기를 넣는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하지만 순대는 고기 외에도 두부, 숙주나물·시래기·양파 같은 야채와 당면·맵쌀·찹쌀 등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주로 고기와 부산물이 들어가는 육류 중심의 소시지와는 다르다. 게다가 가축의 피를 넣는 소시지는 흔치 않다. 가축의 부산물을 이용해 먹거리를 만드는 전통은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기원전 3000년께 고대 수메르인들이 처음 소시지를 만들었다고 하고, 중국도 기원전 6세기에 양고기로 소시지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만큼 그 역사 또한 길다.

“프랑스 음식 중에서 순대에 가장 가까운 걸 찾아봤더니 ‘부댕 누아르’라는 게 있더군요. 돼지 피와 고기·내장·쌀 등을 넣은 것이 순대처럼 보이긴 하지만 맛은 달라요.”

“순대라고 하면 흔히 돼지순대만 떠올리지만 조선시대에는 개의 창자나 소 창자를 이용한 순대도 있었다고 해. ‘개장’, ‘우장증(牛腸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순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거든.”

“함경도 ‘명태순대’도 있잖아요. 내장을 꺼내 알과 이리를 골라내고 뼈를 발라낸 뒤 만두소와 비슷한 소를 넣지만 독특하게 간은 된장으로 하고 쌀을 조금 넣죠.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서 한겨울에 얼려두고 먹으면 그만이었대요. 갑자기 손님이 왔을 때도 좋고 몇 마리 줄에 꿰어 선물로 주기에도 좋고.”

“함경도에서 내려와 속초에 정착한 ‘아바이’들이 명태가 비싸니까 흔한 오징어로 순대를 만든 게 ‘오징어순대’라지. 그래서 ‘아바이순대’는 원래 오징어순대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어느새 돼지순대가 이 이름을 가져가 버렸어.”

일반적으로 순대는 돼지 소창으로 만들지만 아바이순대는 대창에 소를 채우기 때문에 큼직한 것이 특징이다. 민어 부레에 야채와 고기를 다지고 두부와 함께 소를 넣은 ‘어교순대’도 있다. 다만, 민어가 비싸고 부레를 날로 즐기기를 좋아하니 이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순대에 곁들여 나오는 간·허파·머리고기·오소리감투(돼지 위장)와 같은 부산물을 더 즐기는 이들도 많다. 국밥에도 오소리감투와 아기보·머리 고기가 넉넉해야 씹는 맛이 난다. 순댓국 정식은 순대 접시가 따로 나오기 때문에 국밥과 순대를 다 같이 즐기면서 간단하게 술 한잔 하기에 그만이다.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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