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매니어, 올드무비를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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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40년 전 만들어진 영화 막차로 온 손님들’이 충무로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다시 만났다. 유현목 감독<中>과 주연배우 이순재<右>·문희씨가 상영에 맞춰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충무로영화제 제공]

한국 영화의 대명사격인 충무로를 무대로 올해 처음 열린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9일간의 행사를 마치고 2일 폐막한다. 최신작 위주의 기존 영화제와 달리 국내외 고전영화에 초점을 맞춘 이번 영화제는 한결 폭넓은 세대가 관객으로 참여하는 성과를 냈다. 지난달 25일 개막 이후 국내외 고전영화 150편이 상영된 충무로의 극장 세 곳에는 복지관 등을 통해 단체관람에 나선 노년층, 친구·가족과 삼삼오오 짝을 이룬 중·장년층 관객이 곧잘 눈에 띄었다. 젊은 관객 위주의 일반극장가나 다른 영화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올드 팬들과 함께 올드 스타들도 모처럼 충무로 나들이에 나섰다. ‘막차로 온 손님들’(1967년작)을 40년 전 만들었던 유현목 감독과 배우 문희·이순재씨, 20년 전 작품인 ‘기쁜 우리 젊은 날’(87년작)의 배창호 감독과 황신혜씨 등이 관객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고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77년작) 상영 때는 정일성 촬영감독과 박정자·최윤석·손영순·유순철씨 등 출연진이 고루 나와 촬영 당시 갖가지 일화를 들려줬다. 할리우드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은 매진행렬을 빚어 고전영화에 대한 관객수요를 확인시켰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도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관객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젊은 매니어 관객들은 따끔한 질책으로 영화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장편데뷔작 ‘THX1138’(71년작)과 존 부어맨 감독의 ‘서바이벌 게임’(72년작)은 각각 첫 상영 직후 화면비율이 오리지널과 다른 판본으로 상영됐다는 항의 글이 영화제 홈페이지에 여럿 올랐다. 영화제 측은 필름 수급 과정의 문제점을 사과하는 한편, 환불과 무료상영을 마련했다.

김홍준 운영위원장은 “첫회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고, 고전영화 애호가·영화제 매니어·일반 시민 등 다양한 관객층을 겨냥하는 행사라서 관객들이 영화제에 빠져드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면서 “영화제 중반으로 갈수록 다양한 관객이 저마다 볼만한 영화가 있다는 기대로 극장을 찾게 된 것이 성과”라고 말했다.

극장 밖에서도 중고 만화, 추억의 간판극장, 구형 전자오락기 등 각종 추억상품을 판매·전시한 ‘충무로 난장’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영화제 측은 남산한옥마을·청계광장 등에서 열린 무료공연과 야외상영까지 합해 총 15만 명이 영화제와 부대행사를 즐긴 것으로 추정했다. 극장 좌석은 전체 7만3000여 석 가운데 64%인 4만7000여 석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영화제는 1일에도 대한·명보·중앙 세 극장에서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 등 3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2일에는 충무아트홀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된 알렝 코르노 감독의 최신작 ‘두번째 숨결’의 상영과 폐막식이 열린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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