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고원을넘어서>8.끝 길기트.이슬라마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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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훈자마을에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약 3시간쯤 달리면 길기트강과 인더스강이 만나는 곳에 도달한다.이곳이 카라코람.히말라야.힌두쿠시등 세 거대산맥이 서로 맞닿은 지구상의 유일한 지점이라고 한다.
이곳부터 인더스강을 따라 계속 남쪽으로 가면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세계에서 아홉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낭가 파르바트峰(8천1백25m)밑을 돌아 지나간다.
칠라스 조금 못미처에 있는 군나르휴게소에서 올려다본 낭가 파르바트봉의 자태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려오면서 본 그 어느 곳보다도 뛰어난 절경이었다.
길기트에서 약 1백㎞쯤 떨어진 칠라스는 고대 史書에도 자주 나오는 지명인데 실크로드를 따라 간다라 지방으로 가려면 반드시이곳을 통과해야만 했다.그래서인지 이 부근에는 각종 형태의 불상과 글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 글들은 옛 탁실라語 또는 카로슈티語등으로 쓰였다고 하는데이곳을 지나다녔던 상인들이나 승려들이 견디기 힘든 고통속에서 안전한 여행과 마음의 안정을 빌었던 내용들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도 이날 저녁 칠라스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하고 인더스 강가에 자리잡은 샹그릴라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 식사후 강가에 나가 청명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모처럼 쉬려고 하는데 강 밑쪽으로부터 뜨거운 열풍이 불어와 견딜수없었다.할수없이 호텔 방으로 돌아왔으나 선풍기는 오히려 더 뜨거운 바람만 일으킬뿐 소용 없었다.밤새 한잠도 못잤다.이것은 한낮에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열을 받았던 강 양쪽 바위산들이 저녁때가 되면 오히려 열을 발산하면서 난기류가 생기는 현상이라고한다. 다음날도 우리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달렸다. 길 아래 수백m 밑으로는 흑회색의 인더스강이 노도와 같이 흐르고 있었고 강건너 절벽 중간에는 토담집들이 점을 찍듯이 군데군데 나타나는가 하면 가파른 절벽 사이사이로는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어 놓은 풍경이 그림같이 지나갔다.저녁 늦게 우리는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인더스강과 갈라지는 아보타바드에 도착했다.군자답고개로부터 6백40㎞,이곳부터 인더스강은 하이웨이와는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데 강을 건너면 불교의 발상지인 간다라지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지방에는 일찍이 마케도니아 알렉산더大王의 동방원정을 따라왔던 그리스인 후손들이 살고 있었다.이들이 이곳에서 만난 불교와 그리스예술의 기법을 접합시켜 만든 간다라미술이 뿌리내린 곳이다.특히 2세기께 쿠샨왕조를 일으킨 카니슈카왕조 때 간다라의불교는 가장 번창했다.하지만 지금은 찬란했던 불교는 온데간데 없고 이곳 주민들은 모두 열렬한 이슬람신자가 되어 있었다.
간다라의 중심지인 탁실라.이곳에는 그옛날 화려했던 불상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한창 번창했던 시르캅과 비르마운드등 도시는폐허가 된 유적지로만 남아 있다.
탁실라를 뒤로 하고 우리는 옛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는 20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이슬라마바드(라발핀디)로 들어갔다.長安(西安)으로부터 장장 5천㎞의 旅路,옛날같으면 1년반이 걸렸을 험한 길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실크로드는 금.은.비단.차.도자기등 물자가東西로 이동한 교통로로서 뿐만 아니라 때로는 여러 민족의 각축장으로,때로는 종교와 사상의 가교로서 역할한 흔적을 강하게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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