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겪는한국외교>2.통일정책 사안마다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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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가 급변하고 있는데 우리 외교는 구렁텅이 속으로만 빠져드는 인상을 주며 국민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은 평양으로 달려가고,북한은 5共 때나 들을 수 있었던 지독한 욕설로 우리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대화는 커녕 얼굴도 맞대지 않겠다는 태도다.우리가 주장해온 당사자 원칙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런 사태 전개의 가장 큰 원인은 현정부가 통일정책의 총체적구상을 갖고 있지 못한데 있는 것으로 꼽히고 있다.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상황을 판단하고 헤쳐나갈 기준도 없고,그것을 알아도 뒤집기 어려운 고질적인 정책 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통일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관리들중 상당수는 사석에선 공식적 논평과 다른 의견을 늘어놓곤 한다.『특별사찰이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공식 발표하고서도 뒤에선『사실 실질적인 조치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슨 전략적인 고려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윗사람이 미래지향적인 큰 그림이나 구체적 전략수립 없이 내놓는 즉흥발언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읽힌다.
그러다보니 장기적인 구상은 관리들의 머리에만 맴돌고 실질적인정책 제시는 윗사람 발언들을 적당히 꿰맞추는 임기응변식으로 나타난다. 최근 논란을 빚은「특별사찰」문제만 해도 북한이 거부하는 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정부 관리들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은 당사국이 승낙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거 핵문제 해결을 포기하느냐 여부도 아니고,단지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그렇게 큰 홍역을 치러야 했던 것이 우리 현실이다.
여론을 끌어가는 층은 물론 대통령과 정부내 고위 정책결정자들사이에도 하나의 총체적 통일구상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듯하다.
「특별사찰을 포함한 실질적인 조치」라는 회의 결과 발표문 하나를 놓고도 청와대와 안기부.통일원.외무부 등 관련부처마다 의견이 제각각이다.
일관성도 없다.
金泳三대통령은 취임 이후 수차례에 걸쳐 흡수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다짐했다.그러나 실제 행동은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으로 몰아가고 있다.단계적 통일을 위해,특히 북한의 개방과 동질성 회복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인 對서방 수교를 달가워 하지 않는 눈치다.오히려 막으려 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핵무기를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 수 없다』『핵무기는 반개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정상회담을 제의했고 그후 조문파동.北韓불안정론 등이 제기되었다.
그런 가운데 북한 정세에 관해 첩보인지 정보인지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와 북한 새정권의 뒤통수를 때렸다.
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과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이 지난 연말 기자간담회에서『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해 놓고 이제 그 문제를 확인하기 위한 과거핵 투명성 보장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정상회담.특사교환.불바다 발언.정전위 철수.특별사찰….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단일 사건에만 매달려 전체를 보지 않으려 한다. 겨우 2년전인 92년 우리가 중국과 수교할때까지 만 해도교차수교가 우리 외교의 최대 목표였다.교차수교는 한반도 정세를안정시키는 수단으로 유효하다는 생각이었다.
韓昇洲외무장관은 동남아안보회의에서도 多者안보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그러나 그런 조치를 위한 첫단계라할 미국.일본과 북한의 수교를 참을 수 없는 외교적 실패라고 보는 정서가 지배하고있다. 金대통령도 취임사에서『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北-美관계개선 속도를 우려하는 등 그 뒤의 우리정부 태도는 북한고립화 정책에 매달리는 인상을 풍겨온게 사실이다. 중국.러시아와 수교 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건지 구상이 없다.국교정상화 문서에 서명하는 한번의 행사가 통치자의치적으로 기록됐을뿐 그런 관계를 전체적인 외교목표에 맞춰 관리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통일문제.외교문제가 국내정치에 이용되고 있다는 우려도 많다.
그나마 청와대가 5일 수석회의에서 정책혼선과 대통령이 독단적이라는 여론조사 지적 등을 놓고 自省論을 제기한 것은 다행스런일이다. 李洪九부총리는 통일정책은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그러나 정책결정자들 사이에 총체적 외교구상,對北觀에 대한 공감대를 마련하는 게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金鎭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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