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만의 문제가 아닌 경수로-러시아형 사고땐 주변국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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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얼마전 북한은 느닷없이 한국형輕水爐를 받아들일수 없다고 발표했다.미국과의 합의사항을 갑자기 뒤집는걸 보면 앞으로 北-美회담에서의 합의사항들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의문이다.우리 정부는 북한이 한국형경수로를 끝내 거부할 경우 북한의 경 수로에 단 한푼의 재정지원도 할수 없다는 입장이다.그렇다고 미국이 그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70년에 경수로를 原電의 主宗爐型으로,重水爐를 보완노형으로 하여 기술자립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미국 웨스팅하우스社와 프랑스 프라마톰社의 경수로 설비기술을,또 미국벡텔社의 원전종합설계기술을 선택적으로 전수받았으 며 미국 전기연구소(EPRI)의 경수로 개량연구에도 참여,그들의 기술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정착시킨바 있다.
특히 86년 靈光원전 3,4호기의 1백만㎾급 경수로를 도입하면서는 미국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社가 개발해 애리조나州에 건설,기술검증을 끝낸「시스템80」노형을 선정했다.게다가 핵심기술에대해서는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기술전수가 흐지부 지되는 일이 없도록 했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한국형원자로」는 이「시스템80」노형에 EPRI의 경수로 개량연구 결과 검증된 기술을 접목해 안전성을 훨씬 높이면서 우리 산업에 맞게 개발한 원자로 형식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소는 이 노형에 맞추어 1백만㎾의 전기출력을 내게 설계된 발전소를 표준형원전으로 정하고 이 노형과 발전설비를 계속 복제.건설하고 있다.이 표준형원자력발전소는 한국의 산업실정에 맞도록 국내에서 설계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자재는 국내에서 생산이 가능하므로 건설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 이 한국형경수로를 받아들이게 되면 경제적인 면에서는 물론 운전중에 발생할 수 있는 기술적인 어려움의 해소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기왕에 완성된 설계를 활용하는데다 제작도靈光의 것을 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원가절감효과 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또한 건설중에 필수적인 특수건설장비나 운영절차서,보수를 위한 부품,연료교체시의 특수공구등 모든 장비를 그대로 쓸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에서도 훨씬 앞설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이나 편의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전의 안전성확보문제다.원자력발전을「악마와의 계약」이라고 하는 사람도있지만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원전은 그야말로 인류의 재앙이다.따라서 안전성이 검증된 노형의 선택은 다른 어 느것보다도 우선해야 할 기준이다.러시아가 그들이 새로 개발했다는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 안전성은 아직까지 검증된 바 없다.그렇다면 북한이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러시아의 경수로를 들여다 시험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경수로 건설이 시급하다해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경수로를 건설해놓고 스스로실험용 모르모트가 돼야 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만의 하나 불행한 일이 생길 경우 그 피해는 북한은 물론 한반도 전체와 이웃나라에까지 미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한마디로 북한의 트집에 말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경수로를 들여다 기술인력을 낭비하고 앞으로 50년 동안 골치 를 썩일 수는 없다.선진국의 원전회사들은 자기네들의 설비를 판매하기 위해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세일즈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원자로의 도입은 자칫 한반도에「트로이의 목마」를 불러들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북한당국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북한이 한국형경수로를 거부하는 사정을 모르지는 않는다.
노형도 노형이지만 무엇보다「한국형」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뒤늦게 한국형을 채택한다면 북한당국이 주민들에게체면이 서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그렇다 면 우리도 굳이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있지 않겠는가.
한국형경수로 명칭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해외와 북한에는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시스템 80」에 한국을 뜻하는 K를 붙여 「시스템80+K」로 하고 국내에서 사용하는 명칭은「통일경수로」라고 하는 것이다.이러한 이름이라면 북 한도 굳이 거부할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남북통일이 이뤄지기 전에 원자로부터 통일했다는 상징적 의미도 결코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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