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정책을진단한다>2.방만한 경영 정부가 거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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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부실기업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부실기업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야할 때 흔히 간과되는 대목은부실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하는 문제다.
그동안 부실기업정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은 늘 인수기업 선정을 둘러싼 의혹과 특혜是非가 초점이었지,정작 발단이 된 부실화의 책임규명은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해 왔다.
지난 88년 5共비리특위의 부실기업정리 청문회에서도 기업을 억울하게 뺏겼다는 前사주의 하소연과 은행.정부측의 변명,의원들의 질타만 요란했을 뿐 그 기업이 왜 부실화됐는지,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었는지는 속시원히 가려지지 못했었다.
이미 한차례 합리화 지정을 받았던 漢陽이 또다시 부실화된데는이같은 무책임한 풍토도 한 몫을 했다.5共의 부실기업은 한마디로 기업주.은행.정부가 부실요인을 증폭시켜 만들어낸 합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건설이나 해운산업의 부실은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데다 기업주의 방만한 경영행태가 가세하고 은행은 여기에 끌려가는 들러리 역할을 했어요.70년대 만들어진 해외건설촉진법과 해운진흥법은 경제여건 변화에 관계없이 금융.조세지원의 특혜 를 주도록 돼있었고 기업주들은 이를 충분히 활용했습니다.그러다가 80년대들어 국제경기가 곤두박질 치면서 거대한 부실기업群을 양산한 것이지요.은행의 사전심사나 사후관리등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당시 부실정 리를 맡았던 재무부 실무자의 말이다.6共에서 시작돼 새정부에 넘겨진 漢陽의 부실화과정도 이와 다를게 별로 없다.
86년 1차합리화 당시 漢陽은 알토란같은 보유토지를 처분하는등 피나는 自救노력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그런데 합리화조치가 마무리된 88년부터 땅값이 뛰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뀐다. 『漢陽의 裵鍾烈회장은 땅만 그대로 갖고 있었어도 합리화지정은 처음부터 필요가 없었다고 했어요.정부말만 믿은 결과 남 좋은 일만 시켰다는 것이지요.』(상업은행 관계자 A씨) 여기서 裵씨가 얻은 결론은「땅만 가지고 버티면 산다」는 것이었다.때마침 불어닥친 주택 2백만호 건설바람을 타고 漢陽은 여기저기서 땅을 닥치는대로 사들였다.
그러나 5.8조치로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분양이 부진해졌고,대형産災와 부실시공이 말썽을 일으키는등 惡材가 겹쳤다.마지막카드였던 서울가락동民正黨연수원 부지매입은 특혜시비와 정치적 의혹만 남긴채 漢陽을 회생불능 상태로 빠뜨리는 결 정적인 빌미가됐을 뿐이다.사태가 이토록 악화되는 동안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은 漢陽의 무모한 투자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했다.이에 대해 상업은행의 K씨는 이렇게 반문한다.
『은행법을 보세요.동일인 여신한도는 자본금의 25%로 돼 있습니다.당시 상업은행 자본금을 대략 1조원으로 잡으면 한도는 2천5백억원에 불과합니다.그런데 漢陽은 9천억원이 넘습니다.이런 한도를 지켜나간다는 결심이 실무적으로 가능하다 고 봅니까.
』적어도 은행장이상의 선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라는 얘기다.
漢陽부실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한데는 돈을 내준 은행뿐만아니라감독당국의 책임도 있다.
〈金鍾秀기자〉 한도를 넘긴 은행대출은 은행감독원의 특별승인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금융계에서는 이 과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으로 금융계의 황제로 군림하던 李源祚씨를 꼽고있지만 당사자가 장기외유중이고 관련자들도 모두 입을 다물어 확인할 길은 없다.
어쨌든 漢陽부실은 社主 裵씨의 빗나간 경영행태에 주로 책임이있겠지만,그 규모가 늘어난데는 은행과 감독당국이 제때에 관리를못한 탓도 크다.再起를 꿈꾸며 무리하게 사업을 벌인 裵씨는 지난해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됐다 풀려나 지금은 漢 陽의 경영과 소유에서 완전히 떨려난 채 지방의 山寺를 전전하고 있다.그러나 은행과 감독당국에서 이로 인해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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