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쿠바의고민>1.왜 미국행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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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으니 해상 탈출을 삼가시오.매우 위험합니다.거듭 말합니다.매우 위험합니다.…』 쿠바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공지사항 한 토막이다.수도 아바나의 한 택시운전사는『날씨가 개면 탈출하란 말인가,쯧쯧』하며 혀를 찼다.
이제 미국으로의 탈출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쿠바 어느 곳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 돼버렸다.
쿠바 한쪽 귀퉁이에 자리한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겠다는 미국정부의 엄포따위는 아랑곳 않는 분위기다.쿠바사람들은 『거기도 미국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수도 아바나의 한복판에서 리어카에 탈출용 뗏목을 싣고 태연히해안쪽으로 가는 두 젊은 남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움츠리기는 커녕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기까지 한다.
-왜 미국으로 탈출하려는가.
『그냥 굶어 죽으란 말인가.』 -매우 위험하지 않은가.절반이상이 도중에 상어 밥이 된다던데.
『쿠바에서 계속 사느니 차라리 상어 뱃속에서 살겠다.』 -뗏목을 어떻게 만들었나.
『피와 땀으로 만들었다.』 탈출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북부 해안에 나가면 漁夫를 만나듯 쉽게 이들을 만난다.고깃배가 어망을 손질하는가 싶어 가보면 탈출기도자들이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경찰이나 군대의 단속은 전혀 없었다. 아바나근교 산타마리아 해수욕장 한복판에서도 세 팀이 탈출을 준비하고 있었다.40대 여인은 물병에 소금을 타고 있는가 하면 남자들은 뗏목 밑에 부착하는 튜브에 바람을 열심히 넣고 있었다.여인에게 물었다.
-겁나지 않나.
『이미 결심한 일이다.』 -도중에 죽을수도 있지 않나.
『여기서도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한 남자가 끼어 들었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마음에 안들면 거리로 나와 돌멩이를던진다지만 우리는 그렇게 안한다.쿠바인들은 뗏목을 만들어 목숨을 걸고 떠난다.』 -정치적인 탄압이 탈출이유란 말인가.
『그런 것은 잘 모른다.먹고 살 수만 있다면 왜 이러겠는가.
쿠바는 끝장이다.』 이 광경을 함께 지켜본 쿠바의 한 지식인이입을 열었다.
『한국식 잣대로 쿠바인을 측량하려 하지 마라.카스트로가 앞으로 1백년을 더 집권한다해도 대다수의 쿠바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어떻게 먹고 사느냐가 문제다.누가 뭐라고 해도 잘 사는 나라였던 쿠바가 90년을 기점으로 굶주림속으로 굴러떨 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아바나시내를 돌아봐도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요 몇달 사이에 탈출자가 폭증하는 것인가.
경비가 전혀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보면 미국의 분석대로 카스트로의 의도적인 전략이 아닌가.
『터무니 없는 소리.해안경비대가 타고 다니던 차량용 기름이 떨어진 것이 첫째 이유다.게다가 경비선과 탈출선이 충돌하는 사건이 빈발해 여론이 악화되자,해상단속까지 포기해 버린 것이다.
카스트로는 화살을 미국으로 돌리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이제쿠바인들의「엑서더스」를 저지하는 감시나 단속은 전혀 없다.지난달 5일의 집단시위를 계기로 카스트로까지 공개적으로『갈 사람은가라』고 선언했다.
과연 얼마만큼의 국민들이 더 쿠바를 떠나야 엑서더스의 행렬이그칠 것인가.『미국정부는 쿠바 국민들이 봉기해 카스트로정권을 무너뜨리기라도 하길 기대하고 있지만 그건 쿠바의 현실을 모르는소치다.카스트로에 맞설 세력도 집단도 없다.수 많은 딸들이 거리에서 나가 몸을 팔고 있으나 부모들은 그저 벌어다 주는 달러에 황공해할 따름이다.이도저도 안되는 사람들은 결국 상어밥이 되는것을 감수하고 뗏목을 타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자는 이렇게 말하면서『미국이 진정으로 쿠바의 뗏목행렬을 막고 싶다면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 조치부터 푸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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