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고원을넘어서>7.훈자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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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군자랍고개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빙하로 덮인 깎아지른 산봉우리들 사이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산중턱을 가로질러 달리는 길이다.
길위에서 내려다본 골짜기밑은 5백m에서 1천m나 되는 아찔한낭떠러지며 위를 쳐다보아도 수백m의 절벽이다.옛중국 史書에「만약 사람과 말이 이 길에서 떨어지면 강에 닿기도 전에 갈기갈기찢어져 아무 것도 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이 카라코람하이웨이는 중국과 파키스탄이 합작으로 20여년의 공사끝에 1978년완공했다.파키스탄 사람들은 이 길의 완공을 거의 기적이라고 자랑한다. 지구상 가장 험난한 지형에 가장 어렵게 완공한 토목공사라고 한다.빙하와 산사태 지역을 뚫고 수시로 불어오는 강풍과여름에는 48도나 올라가는 더위,겨울에는 영하 30도나 내려가는 혹한등의 조건속에서 이룩한 공사기 때문이다.초기 공 사기간중에는 모든 자재와 장비를 말로 운반했고,기사들이 로프를 타고절벽위로 올라가 發破작업을 했다고 하니 가위 그 어려움을 상상할 수 있겠다.그래서 이 공사기간중에 희생된 인명만 해도 3천명이 넘었다고 한다.
군자랍고개를 떠난지 2시간쯤, 우리는 파키스탄이민국이 있는 소스트에 도착,입국수속을 마쳤다.
소스트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1백㎞쯤 왔을 때 우리 눈앞에는 지금까지의 험상궂은 폐허의 골짜기와는 너무나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 펼쳐졌다.
탁 트인 넓은 계곡 양옆 언덕으로 돌 축대를 쌓아 만든 조그마한 밭들이 물고기의 비늘모양처럼 가지런히 이어졌고,언덕아래로는 온통 푸른 숲이 우거져있는 사이로 토담집들이 옹기종기 몰려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멀리서 본 푸른 숲은 전부 살구나무로 먹음직스런 살구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여기가 하늘아래 첫동네 해발 2천5백m에 자리잡고 있는 무릉도원 훈자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장수마을로도 유명해 각국의 長壽學연구 의학팀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고 한다.
기원전 이란지방으로부터 이곳으로 이주해와 조그마한 왕국을 세운 훈자족은 이곳 실크로드를 지나는 카라반들에게 먹을 것과 숙소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세금을 징수하는 한편,그들 자신 일찍부터 파미르를 넘어 중국과도 활발한 교역을 했다고 한다.
훈자의 미르王家는 파키스탄이 독립한 이후인 1967년까지도 실제로 이 지역을 통치했다고 하는데 마을 북쪽 언덕위에는 15세기께에 쌓았다는 발티트王城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고,북쪽끝 훈자강이 흐르는 언덕 위에는 알티트요새가 우뚝 서 있어 바로밑옛 실크로드를 내려다볼 수 있다.
이튿날 훈자마을을 떠난 우리는 길기트쪽에서 힘겹게 올라오는 화물트럭들과 계속 마주쳤다.
이들 트럭은 길기트로부터 말린 살구.약초.아몬드.땅콩.나일론스카프등을 싣고 카시카르까지 가서 중국의 비단.차.TV.냉장고.망치.마호병등과 물물교환으로 맞바꾼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낙타가 다니던 그 옛날의 실크로드는 길이 넓어지고 포장은 되었으나 이곳 파키스탄 북부지역은 아직도 중국의 서역 경제권에 속해 있는 것 같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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