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행 '국민참여 재판' 배심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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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국민참여 재판(배심원제)을 앞두고 29일 서울 마포 서부지방법원 제303호 법정에서 모의재판이 열렸다. 검사가 배심원들에게 ‘최초 진술’을 통해 사건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29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형사대법정. 내년에 시행되는 국민참여 형사재판을 앞두고 서부지법 형사11부 장진훈 부장판사의 심리로 모의재판이 열렸다. 판사석과 검사석 사이에 10명의 배심원이 자리를 잡았다. 법원이 무작위로 뽑은 300여 명에게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이 중 30명이 실제 법정에 나온 것이다.

재판은 30명 중 10명의 배심원을 고르는 작업으로 시작됐다. 제비 뽑기로 10명씩 세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씩 나와 검찰과 변호사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사람이 아플 때 112에 신고할 것인가, 119에 신고하겠는가" "가정폭력이 있을 때 이혼해야 하느냐, 가정을 지켜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배심원 후보들은 나름대로 소신껏 답변을 내놓았다.

검찰과 변호사 측은 대답을 들으며 '기피 인물'을 골라내는 방식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의 남성 4명과 여성 6명(남성 1명은 예비 배심원)이 최종 선발됐다. 학생.교사.의사.학원강사.주부.보험설계사 등 직업도 다양했다. 서부지법 관계자는 "모의재판이어서 여러 방식을 시험해 본 것이며, 내년에 시행할 때는 법원 관할 지역 주민 중 무작위로 선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배심원 선정이 마무리되자 본격적인 사건 심리가 시작됐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40대 가정주부가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순간적으로 목 졸라 살해한 실제 사건을 각색한 내용이었다. 피고인은 연극배우 구수현(32)씨가 연기했다.

쟁점은 살인의 고의성 여부. 실제 공판 못지않은 치열한 법리다툼이 벌어졌다. 검찰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수건으로 강하게 압박해 살인에 이르렀다는 부검의 증언과 인공호흡이나 구급차 요청을 하지 않은 사실을 들어 '고의적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피해자가 알코올 중독으로 건강상태가 안 좋았고, 피고인이 방어 차원에서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고 반박했다.

최후변론 시간. 서부지검 김종호 검사는 배심원들을 향해 파란색 보자기를 들어 보였다. "지금부터 30초를 세겠습니다. 하나, 둘, …, 삼십." 이어 김 검사는 "피고인은 이 시간 동안 보자기를 이용해 피해자의 목을 강하게 압박했고, 피해자는 혈관이 터지는 고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철기 변호사가 나섰다. 그는 살인사건 범행을 재연한 사진을 꺼내 들고는 검찰 주장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는 소파에 앉아 목을 기댄 상태였고, 피고인은 똑바로 서있는 상태에서 목을 졸랐다. 이 자세에서 목을 눌러도 살인까지 이르긴 힘들다"는 취지였다.

배심원들은 양측의 최후변론을 들은 뒤 오후 3시45분부터 한 시간 동안 평의에 들어갔다. 숙의 끝에 배심원단은 전원 일치로 살인에 대해선 무죄, 폭행치사에 대해선 유죄라는 평결을 내놨다. 재판부는 이 평결을 참조해 피고의 폭행치사 부분에 대해서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배심원 평결이 구속력을 갖는 미국과 달리 국민참여재판제의 평결은 권고의 효력만 가진다.

배심원으로 참가한 김선혜(25.여.보육교사)씨는 "하루 업무를 포기하고 참여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며 "법이 나를 보호하며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배심원=해당 지방법원 관할 구역에 사는 만 20세 이상 주민 중에 무작위로 선정한다. 사형.무기징역 사건에는 9명, 그 외 사건은 7명이 참여한다. 변호인 측이 공소사실의 핵심 내용을 자백했을 때는 5명의 배심원이 참여한다. 배심원으로 선정돼 재판에 참여할 경우 교통비와 수당 명목으로 하루 10만원이 지급된다. 배심원 후보로 추첨돼 통지를 받은 사람이 법원에 출석하지 못할 때는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법원 출석을 거부할 경우에는 2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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