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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돌보는 할머니 '노·노 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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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누구나 나이가 들면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거동이 불편해진다. 식사나 빨래 등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간병인 등을 고용해 이들을 보살피기엔 개인적.국가적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대안은 없을까. 아직 건강이 허락하는 노인들이 다른 노인들을 돌보는 이른바 '노노 케어(老老 Care)' 가 있다. 한 시대를 함께 살고, 함께 늙어간 노년들이 인생의 황혼에서 서로 돕는 것이다. 노노 케어를 넘어 평생의 지식과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며 사는 노인들도 있다. "내 평생 살면서 받고 누렸던 것의 일부만이라도 갚겠다"는 취지다.


≫ 밥 짓고 청소하고 발마사지 봉사

≫ "건강한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한다"

서울 관악구 독산동 중앙하이츠빌 경로당 노인들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발을 마사지해주고 있다. 왼쪽부터 박옥순.이수일.김영순씨. [사진=곽태형 객원기자 knaltang@naver.com ]

서울 금천구 독산1동 중앙하이츠빌 아파트 경로당. 한 동네에 사는 70~80대 노인들이 말벗을 찾아 모이는 장소다. 매일 10~20명 정도의 노인들이 모이는 이곳엔 날마다 오전 11시가 되면 세 명의 할머니가 온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강영예(71).윤분연(72).최옥윤(76)씨다. 이들은 오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 동료 노인들이 먹을 점심을 준비한다. 청소를 하고, 김치를 담그고, 밑반찬을 만들고, 간식거리를 장만한다. 노인으로서, 다른 노인에게 봉사하는 이른바 '노노(老老) 케어(Care)'다.

경로당의 김영모(76) 회장은 "최 할머니 등은 복지관에서 한 달에 20만원씩 나오는 인건비를 모두 경로당 운영비로 내놓는다"고 말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하이츠빌 경로당에는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 1시만 되면 어김없이 이수일(71) 할아버지와 박옥순(67).김영순(68) 할머니가 찾아온다. 동료 노인들에게 발 마사지를 해 주기 위해서다. 이들은 복지관에서 마사지를 배운 뒤 경로당을 돌면서 봉사를 하고 있다. 혼자서 5~6명 노인의 발을 주무르고 누르고 하다 보면 전신이 땀으로 젖어온다. 그래도 마다 않고 원하는 노인들의 발은 모두 풀어주고 나서야 일어선다. 금전적인 보수는 없다. 이수일 할아버지는 "보람을 느끼는 게 보상"이라고 말했다.

기력이 떨어진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돌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돼 있다. 하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노인들이 다른 노인들을 돌보는 노노 케어는 노인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제주시의 실버 예술 봉사회에는 40명의 선생님들이 있다. 평균 연령은 70세다. 이들은 댄스.체조.풍물들을 다른 노인들에게 가르치며 삶의 기쁨을 찾고 있다. 서울 정릉동의 이문옥(69)씨는 동네 노인들에게 춤과 노래를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 무려 12년째다. 서울 마포구 복지관의 송순희(84)씨는 매주 두 차례 일본어를 노인들에게 가르친다. 구봉서.곽규석.배삼룡씨 등 과 함께 유명했던 원로 코미디언 임희춘(71)씨는 현재 직업이 노인 복지사다. 대한노인복지후원회장을 맡아 10여 년째 노인들에 대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규남 객원기자, 사진=곽태형 객원기자 (knalt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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