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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의 사랑…보자기는 어디쯤 날고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윤여정과의 이혼 "딱 두차례 바람 때문에…"

“사랑은 마법의 보자기 같다. 마법의 보자기가 하늘 위를 빙빙 돌다가 나와 어떤 여자의 머리 위를 덮치면 그게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마법의 보자기는 어디쯤에서 날아다니고 있는지 언제쯤 우리 동네 하늘을 지나갈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247쪽)
사랑은 우발적이다. 찾아 나선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머무는 시간도, 정해진 횟수도 따로 없다. 조영남식 ‘사랑’은 그렇다.

『어느날 사랑이』는 ‘세간에 바람둥이로 소문난’ 조영남이 평생에 걸친 자신의 사랑편력을 그대로 적어 내려간 책이다. “나의 사랑경력은 내 미술도록에 실려 있는 전시경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첫사랑, 풋사랑, 짧고 긴 연애, 첫 번 결혼, 첫 번 이혼, 첫 번째 동거, 그리고 나타난 또 다른 사랑 등 각양각색의 사랑 이야기를 그의 말법으로 풀어낸다.

첫사랑은 가난한 음대생 시절 그의 노래에 한눈에 반한 어여쁜 여학생이었다. 약혼자가 있던 첫사랑과 사귄 것 때문에 그는 한양대 음대를 그만둬야 했다. 첫사랑 이전에는 풋사랑도 있었다.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했던 첫 번째 풋사랑은 명함판 독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대학생 오빠에게 범신론을 가르쳤던 세 번째 풋사랑은 시인 강은교다.
두 번째 첫사랑은 젊은 시절 뜻밖의 인기를 얻으면서 흘려보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사랑은 수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결혼하고 다시 이혼’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그는 상당히 조심스런 태도를 보인다. 첫 아내인 배우 윤여정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나는 지금 한때 함께 살던 사람에 대한 얘기를 시시콜콜 쓰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뻔뻔스러운 일이다”라며 힘들게 말을 꺼낸다. ‘살짝 나탈리 우드를 닮은’ 윤여정과는 동생처럼 연인처럼 6년을 지내다 부부의 연을 맺었다. 스스로 축가를 불렀던 미국에서의 결혼식 장면에선 살짝 물기가 느껴진다.
이혼 당시 성격차이라는 보도와 달리, 그는 “연습바람 한 번 본격바람 한 번, 딱 두 차례의 바람으로 잘 쌓아온 나의 가정과 평판이 깡그리 날아갔다”며 “아름다움과 청초함 때문에 정녕 뇌진탕으로 쓰러지는 줄 알았던 여대생”과의 본격적인 만남이 아내에게 들통나 이혼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이쯤에서 오해하기 쉽다. 자신의 여성편력을 자랑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변명을 위한 것일까. 책을 쓴 목적이 불순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서른 한 페이지에 걸친 ‘아주 긴 프롤로그’를 통해 ‘어쩌다 사랑 얘기를 쓰게 되었나’를 구구절절 밝힌 것을 보면, 그에게도 목에 걸리는 가시였던 듯싶다.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간을 결정한 이유는 불사병-사랑을 안 하는 병, 연애를 안 하는 병-에 걸린, 일명 ‘청담학교’ 소속 지인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다. 남녀 최상의 공통주제가 ‘사랑’임에도 남녀가 모인 곳에서 불사병이 만연해 있다면, 그야말로 비상시국이라는 것이다.

그의 관심은 자연히 ‘사랑이 무엇인가’로 흐른다. 사랑하다 말다로 반복되는 이성과의 사랑 외에 ‘사랑’이란 물음을 손에 쥔 그에게 답을 들고 다가온 사람은 딸 은지다. 특별한 애정 표현 없이도 그저 같이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하는 딸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사랑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떨어져 사는 아들의 여자 친구를 소개 받던 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서 뻗어버릴 만큼 만취했다는, 뭉클한 부정도 전한다. 자신과 달리 한 여자와 평생을 살다 간 아버지의 사랑이 가장 부럽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40년지기인 이장희·김민기·송창식·마종기, 그리고 이윤기 등 남자들과의 각별한 관계에 관해선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냐?”고 되묻기도 한다. 그의 사랑론은 예수의 사랑에서 비로소 끝을 맺는다. 한때 신학도였던 그는 “진리가 사랑이라고 말한 예수는 서른 두셋일 때 그 말을 하고 죽었다. 내가 찾던 진리는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나보다 낮은 사람의 발을 씻겨줄 수 있는 마음, 이웃을 진짜로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진리였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고 정리한다. ‘인간 복덕방’이라 불릴 만큼 폭넓은 그의 인간관계의 원천을 보는 듯하다.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자료제공=한길사 / 031-955-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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