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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읽기] 법과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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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다. 이 당연한 명제가 피부에 와 닿지 않거든 하루의 일상을 돌이켜보기만 하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 마신 커피 한 잔이 상했다면 커피 제조사나 유통업체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출근 버스를 탄 순간부터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된다. 더구나 운행 중 사고가 났다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호소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 문을 들어서는 것은 근로계약과 노동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정의의 여신, 광장으로 나오다』(강정혜 지음, 프로네시스)를 읽다 보면, 이렇게 법이라는 게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공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이 법전 조문으로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늘 살아 숨 쉰다는 건, 제대 군인에게 취업 시 가산점을 주는 법률조항에 대한 위헌 판결(1999년)에서 엿볼 수 있다. 문제의 조항이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정신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뿐만 아니라 사법 제도도 시대의 풍향계일 수밖에 없다. 최근 로스쿨 제도 도입을 둘러 싼 관련 당국과 학계의 대립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로스쿨이라고 하면 미국 법정 소설이나 영화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약자와 정의의 편에 서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맹활약하는 변호사의 이미지. 그런 이미지와 만나고 싶다면 존 그리샴의 『거리의 변호사』(시공사)가 제격이다.

대형 법률회사에서 남부러울 것 하나 없이 잘 나가던 변호사 마이클 브룩은, 자신이 일하는 법률회사에 원한을 품한 노숙자가 인질극을 벌이는 걸 목격한다. 겉으로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피폐하고 불안했던 그는 노숙자들을 대변하는 거리의 변호사로 거듭나게 된다. 거대한 자본의 힘을 보호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법률회사와, 기본적인 인권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소설 속 미국 사회의 현실이 우리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현실을 극복하는 일이 양심적인 변호사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할까? 앞으로 로스쿨이 머리만 있는 법 기술자만 양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을 모두 지닌 법조인을 길러내는 교육 및 훈련 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로스쿨 정원 숫자 문제에 가려져 로스쿨의 본질적 기능과 방향, 내용에 관한 논의는 실종되어 버린 게 아닐지.

법 기술자의 극단적 타락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데블스 애드버킷’(악마의 대변자 또는 악마의 변호사)이다. 주인공 변호사 케빈(키아누 리브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인 법률회사 회장 밀턴(알 파치노)의 손아귀에서 극단적인 타락의 수렁에 빠져든다.

안경환 교수(서울대 법대)는 『법, 영화를 캐스팅하다』(효형출판)에서 이 영화가 ‘윤리가 사라진 법은 악마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고발이며, 윤리가 절멸되어가는 현대 법체계에 전체에 대한 묵시록적 예언임을 지적한다. ‘법이라는 외형과 절차만 갖추면 곧바로 정의의 탈을 쓰게 되는 것’이 오늘날 법 제국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로스쿨을 둘러 싼 갑론을박은 그 제국의 주도권을 둘러 싼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다툼인지도 모른다.

표정훈<도서평론가>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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