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장사, 신흥시장이 좌지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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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올 휴대전화 장사는 아프리카·동유럽·중남미 등 이른바 신흥시장에서 희비가 갈렸다. 세계 휴대전화 업체가 최근 발표한 3분기 실적을 보면 신흥시장의 위력이 만만찮다. 신흥시장에서 성과를 낸 노키아나 삼성·LG 등은 시장 점유율이 올라갔지만 그렇지 못한 모토로라나 소니에릭슨은 죽을 쒔다. LG경제연구원 박동욱 책임연구원은 “100달러 미만의 중저가 폰이 많이 팔린 신흥시장에서 누가 성과를 냈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 것”이라며 “앞으로 TV나 자동차 같은 업종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키아는 3분기에 세계 2, 3위 업체의 판매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1억1120만 대를 팔아 40%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중 흔히 브릭스(BRICs)로 불리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서의 판매량이 7670만 대(68%)에 달했다. 휴대전화의 전통적인 시장으로 꼽히는 유럽과 북미에서는 3440만 대(32%)를 팔았다.

삼성은 3분기에 분기실적 사상 최대인 4260만 대를 판매했고 그중 신흥시장에서 1449만 대(34%)를 팔았다. LG전자는 신흥시장에서 힘을 내 3분기에 처음으로 2000만 대 벽을 넘어섰다. LG전자 관계자는 “2분기보다 판매량이 15% 정도 증가했는데 이는 신흥시장의 판매 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모토로라나 소니에릭슨 등은 신흥시장에서 힘을 못 쓰면서 연간 총 판매량에서 2위와 4위 자리를 각각 삼성과 LG에 넘겨줘야 할 위기에 놓였다. 25일(미 현지시간)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모토로라의 3분기 판매량은 3600만 대로 추정된다. 국내외 애널리스트들은 모토로라가 신흥시장에서 판매량을 늘리지 못해 삼성에 뒤진 것으로 분석한다.

신흥시장의 위력은 앞으로 더욱 세질 전망이다. 미 시장조사기관 SA는 현재 11억5000만 대에 이르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이 내년엔 13억 대 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신흥시장의 수요 증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흥시장 진출 확대에 따른 부담도 있다. 판매 단가가 낮아 영업이익률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배영일 수석연구원은 “노키아가 신흥시장의 강자가 된 것은 경쟁사보다 한발 빨리 뿌리를 내리기도 했지만 부품의 글로벌 조달 등에 성공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노키아는 삼성이나 모토로라보다 2~3년 앞선 2004년부터 50달러 안팎의 휴대전화를 개발해 신흥시장에 내놨다. 그래서 노키아의 대당 평균 판매가는 삼성과 LG보다 30달러 이상 낮은 115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은 삼성이나 LG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22%를 기록하고 있다.

대우증권 박원재 애널리스트는 “신흥시장의 소비자들은 현재 100달러 미만의 제품을 많이 사고 있지만 휴대전화를 교체할 때는 100달러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브릭스(BRICs)=2003년 미국 증권사인 골드먼삭스그룹의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경제용어이다. 2000년대를 전후해 빠른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경제 4국의 나라 이름을 합쳐 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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