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끝모를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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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의 금융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가 계속되고, 주택 경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24일(현지시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보유 자산의 가치가 84억 달러(약 7조7000억원)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메릴린치는 2주 전만 해도 자산가치가 45억 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었다. 그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나빠져 부실 규모가 불어난 것이다. 메릴린치는 자산 가치 급락으로 3분기에 23억1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1993년 이후 최악의 분기 실적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다른 투자은행에도 타격을 줬다. 씨티그룹의 자산가치는 3분기에 65억 달러 감소했으며, UBS와 골드먼 삭스도 각각 34억 달러, 14억8000만 달러 줄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3분기 실적 부진으로 3000명을 감원하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 공황을 막기 위해 최근 씨티그룹과 BOA, JP모건체이스 등 미국 3대 은행이 재무부의 지원 아래 750억~1000억 달러 규모의 ‘수퍼 펀드’를 추진하고 있으나 이해 관계가 엇갈려 난항을 겪고 있다.

메릴린치의 부실 충격으로 이날 미국 다우지수는 20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 기대감에 힘입어 소폭 하락으로 마감했다. FRB는 31일 공개시장조작회의(FOMC)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현재 4.75%인 기준 금리를 최대 0.5%포인트까지 인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하는 달러 자산에 대한 매력을 감소시켜 그렇지 않아도 약세인 달러 가치를 더욱 하락시킬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주택시장도 침체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전미부동산중개업협회(NAR)는 9월 기존 주택 판매가 전달보다 8% 감소해 99년 판매 동향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고 이날 발표했다. 일반 주택 재고는 10.2개월 분량으로 근 20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고, 평균 주택 가격은 전달에 비해 4% 하락했다.

최근 영국과 스페인의 주택 가격도 하락해 미국의 주택 경기 침체가 세계로 확산하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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