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혁명시대>下.국내기업들의 저가전략-철저 薄利多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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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내굴지의 식품업체 D社의 영업총괄이사인 K씨는 요즘 밤잠을설칠 정도로 고민이 많다.
『D社가 거래선별로 상품 공급가격에 차이를 두고 있다』며『공급가를 낮춰 주지 않을 경우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으름장을 거래선 곳곳으로부터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않아도 여러군데의 소매점에서 D社 제품의 판매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부심하던 차에 또다시 날벼락(?)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K씨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통업체에 상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웬만한 제조업체의 영업담당실무자라면 한결같이 느끼는 고충이다.
과자.라면등 생필품의 경우 제조업체들은 제품포장에 희망(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고,슈퍼마켓을 제외한 대부분 소매점들은 이값을 받고 물건을 파는 것이 얼마전까지만해도 일반적인「상식」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말 서울동북부 창동에「E-마트」란 예전에 보지못한 새로운 소매점이 들어서면서부터 이같은 관행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E-마트는 미국.일본등 선진외국에서 가격혁명을 주도하고 있는「디스카운트스토어」란 新유통업태로서 창고같은 대규모매장에 상품을 박스채로 쌓아놓고 파는 대신에 그동안 공식화되다시피했던 슈퍼마켓할인선「10%」마저 완전히 무시하고 물건값을 시중 어느곳보다 20~30%정도 싸게 판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까운 의정부는 물론 반대편 부천지역 주부들까지 원정쇼핑에 나서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인근에 있는 백화점과 슈퍼들은 E-마트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덩달아 가격을 낮춰야 했고 이로 인해 창동일대의 생필품값은 국내의 전반적인 가격인상 분위기속에서 가격하락이란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같이 창동지역 유통업계의 값내리기 경쟁을 유발시킨 E-마트는 이미 인천부평과 신도시일산에 2,3호점부지를 확보해 향후 전국적인 체인망을 구축한다는 방침아래 점포망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다음달에는 E-마트보다 가격할인폭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는 美國브랜드의 회원제 도매센터「프라이스클럽」이 서울 양평동에 오픈하며 내년이면 다국적기업인「마크로」 「카푸」도 인천.분당등지에 대규모할인점을 개점한다.
아직 국내에 진출하지 못한 월마트.K마트등 세계굴지의 할인전문 유통업체들도 국내합작선 물색등 호시탐탐 국내시장공략을 노리고 있고 선경유통.삼성물산.코오롱상사등 국내 대기업들도 앞다퉈대형할인점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단순히 메이커로부터 낮은 가격에 상품을 공급받아싼 값에 판매하지는 않는다.전세계를 돌며 가장 싸게 제품을 만들수 있는 업체를 찾아 단가를 낮추는 한편 경비를 최소화하고 자체마진을 줄여가면서까지 철저한「박리다매」영업방 식으로 운영한다. 결국 창동 E-마트의 등장은 단지 앞으로 국내시장에 돌풍을 몰고올 본격적인 가격혁명시대의「예고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들 신업태의 확산은 그동안 국내 메이커들이 나름대로 유통업자들의 적정마진을 배려(?)해 제시해온 희망(권장)소비자가격 체계의 붕괴와 함께 가격결정권의 이동을 예고하고 있다.
또 제조업중심의 공급자시장(Seller's Market)이 유통업위주의 소비자시장(Buyer's Market)으로 바뀌면서 좋은 물건을 싸게 사려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충분히 반영되는시대가 열릴 것이란게 유통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 망이다.
〈劉志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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