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 갈등 함양군 가 보니 … “골프장 등 무리한 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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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으로 뽑은 군수 주민소환제 웬말이냐.”

23일 경남 함양군 안의면 도로변에 붙어 있는 현수막이다. 며칠전만 해도 함양읍내에는 군수 주민소환을 추진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쪽에서 붙인 현수막들이 많았으나 물레방아 축제를 하면서 거둬버려 지금은 일부 도로에만 붙어 있다. 주민소환투표 청구에 필요한 유권자의 서명도 대선기간에 받을 수 없어 20일부터 중단된 상태다.

대선기간에 양측은 물밑 작업을 통해 각자의 입장을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군수 주민소환 추진위와 반대 단체의 활동은 수면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양측의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주민소환제도는 선출직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주민 복리에 무관심하거나 무능하고 부패할 경우에는 임기 전이라도 공직에서 추방시킬 수 있는 제도로 지난 5월 도입됐다.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제도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면서 일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군수 물러나라=함양군수 주민소환추진위는 지나 9월 27일 함양군선관위에 대표자 등록을 마치고 군수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했다. 추진위는 그동안 서명 위임을 받은 250명이 나서 서명을 받아왔다. 함양군 전체 유권자 15%(5075명)의 서명을 받아 선관위에 제출하면 군수의 직무가 정지되고 투표절차에 들어간다. 추진위는 지금까지 3000여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대선기간을 제외한 내년 1월 26일까지 서명을 받으면 유권자 15%이상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소환추진위 주성남(34)위원장은 “천사령 군수가 주민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업자들의 이익만 대변하고 있어 소환을 추진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천 군수가 세 곳의 골프장 건설, 헬기격납고 유치, 지리산댐 추진, 공해업체 유치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부쳤다고 지적했다. 주민 동의절차 없이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해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환제도 악용 말라=함양군의회는 최근 군수 주민소환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의회는 우선 낙후된 지역경제를 살리기위해서는 지역개발과 공단유치가 필요하다며 군수의 입장을 지지했다. 하지만 군수가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반대주민에 대한 설득이 부족했고 주민소환 배후에는 지역주민이 아닌 외부세력이 개입해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점을 들면서 양측의 자제를 요구했다.

의회는 “소수 주민을 대변하는데도 소홀함이 없겠지만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천 군수측은 “서명 위원들이 서명을 받으러 다니면서 주민소환제의 취지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 리조트 반대를 위한 것이라고 속이고 있어 적법한 서명이 아니다. 이렇게 한다면 어느 군수가 지역개발사업을 벌이겠느냐”고 말했다.

주민소환 투표 비용을 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것도 문제다. 함양군 선관위는 함양군으로 부터 이미 서명기간인 60일간의 단속경비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앞으로 투표에 들어가면 함양군으로 부터 3억여원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

김상진 기자



주민소환법 국내 소개 김영기 교수

“단체장 직무정지 규정은 폐지돼야”

국내에 주민소환법을 소개한 경상대 김영기(행정학·사진)교수는 “주민소환제는 요건만 갖추면 발의되는 정치적 절차이기에 막을 방법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자치단체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규정은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현행 주민소환에 관한법률은 시장·군수·구청장은 유권자의 15%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투표 청구를 하면 자치단체장의 직무가 정지된다.

그는 “피의자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내리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하는 형사사건의 사법절차와도 균형이 맞지 않다. 자치단체장의 공무담임권은 공직선거법에 의해 위임받은 것인데 주민소환법에 의해 제동이 걸린다는 것은 위헌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선 직무정지가 되면 마치 큰 잘못이 있는 것 처럼 비치기 때문에 자치단체장은 서명을 막으려 하고 소환을 추진하는 쪽에서는 자치단체장에게 타격을 줄 수 있어 밀어 붙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청구 사유에 제한이 없어 지역이기주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폐해도 지적했다. 나쁜 마음을 먹고 소환을 추진할 경우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주민소환사유 명시, 직무정지조항 폐지, 주민소환이 실패하면 소환청구인에게도 투표관리비 일부를 부담하는 쪽으로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주민소환제’라는 책을 지난해 처음으로 펴냈으며 정부와 국회의 각종 주민소환제 자문에 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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