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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고함(孤喊)] 황혼의 축제 … 혼례의 순결한 아름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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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1일 거행된 재즈파크 혼례. 전통혼례와 컨템퍼러리 재즈가 퓨전된 독특한 의식이었다.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이토록 행복감을 느낀 적이 없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OBS 경인TV 개국 프로로 방영될 예정이다.

인간세의 예술이란 알고 보면 모두 관(冠).혼(昏).상(喪).제(祭)에서 유래된 것이다. 관혼상제 중 관혼은 삶의 의식이요, 상제는 죽음의 의식이니, 삶과 죽음이야말로 인간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은 성장의 기쁨이요, 혼은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음양의 교합이요, 상은 생의 종료이며, 제는 죽음과 삶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음악, 미술, 춤, 연극, 제례가 모두 이 사례(四禮)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과거에는 이런 예술이 모두 삶의 무대 속에서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서 삶 자체가 예술이었고, 문명이었고, 문화였다. 그런데 어느새인가 이 예술이 우리 삶에서 유리되어 객화된 극장의 무대로 옮아가 버렸다. 연극을 해도 극장에서 해야 하고, 음악 공연을 해도 극장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관객은 돈을 내야 하고 또 그 돈을 위해 흥행사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는 동안 막상 우리 삶의 무대들은 황폐화되어 버렸다. 결혼식을 가도 축의금만 내고 도망가기 바쁘고 막상 식은 아수라장이다. 상례도 요즈음은 병원 영안실이 독점해 버려 천편일률적 과정이 되어 버렸고, 논둑에서 상여소리 휘날리던 낭만은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삶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지난 일요일(21일) 강남 섬유센터 3층 재즈파크란 곳에서는 재미있는 이벤트가 벌어졌다. 우리나라 재즈1세대의 대표주자인 신관웅의 딸 신나라양의 혼례가 거행되었는데 신랑은 통일부 사무관으로 있는 김기혁군이었다. 혼(婚)이라는 글자에 계집녀(女)변이 붙는 바람에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으나, 혼례는 본시 혼례(昏禮)였다. 즉 신부집 마당에서 거행하는 '황혼의 예식'이었다. 황혼이란 음.양이 교차하는 시각을 말한다.

원래 혼례는 납채(納采).문명(問名).납길(納吉).납징(納徵).청기(請期).친영(親迎)의 6례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결혼식이란 그 마지막 단계인 친영에 해당된다. 신랑이 가마 타고 신부집으로 와서 신부를 친히(親) 맞이하여(迎) 가는 예식인데, 중국의 고례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친영례 자체를 신부집 마당에서 거행했고, 신부집에서 신방을 꾸렸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첫 아기를 낳을 때까지 신랑이 신부집에서 유숙하기도 했다. 조선왕조 때 많은 귀인이 외가에서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1982년에 귀국해서 바로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의례'라는 중국 고전을 강독했고, 그 강독의 결과 나는 한국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일제강점 시 무의식적으로 유입된 서양식 '결혼식(이 말 자체가 일본어 단어)'이라는 것의 문제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신랑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신부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들어가 신부 손을 신랑에게 건네주는 바통 터치는, 서양에서는 예부터 여성은 독자적 생존권이 없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즉 결혼식날까지는 아버지에게 소유되어 있었던 물건이었는데 이제 그 소유권을 남편에게 넘긴다는 뜻이다. 심지어 중세기 영주들은 신부의 초야권(Jus Primae Noctis)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개명한 민주사회에서 그 따위 봉건시대의 '노예인신매매'와도 같은 예식을 성스러운 것인 양 웨딩마치에 맞춰 행하는 추태가 참으로 볼품없이 느껴진 것이다. 나는 신이나 주례자 앞에서 서약을 일삼는 수직적 예식을 파기하고, 동네사람들이 마당에 모여 이성지합을 축복하고 공증하는 수평적 예식을 회복해야겠다는 사명을 느꼈다.

기나긴 꽃길에 신부 부모가 먼저 입장하고, 다음 신랑 부모가 입장하여 무대에서 상견례를 하고, 하객에게 인사하고 나면, 신랑.신부가 같이 두 손 잡고 양가 부모님을 향해 입장한다. 이때 우람찬 베토벤 제9교향곡의 '환희의 송가'가 트럼펫 소리와 함께 울려퍼진다. 그러고 나면 무대에서 차분한 국악을 배경으로 간결한 전통혼례가 거행되는데, 관세례.교배례(交配禮).수작례(酬酌禮)의 3례가 그 전부다. 손을 씻어 몸을 정화하고 자리를 성화하며, 서로 절하여 평생 서로 공경하겠다는 표시를 하고, 합환주를 나누어(수작한다) 생명의 결합을 상징한다. 술은 천지대자연의 정화이며 생명의 정액이다. 그것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두 생명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하객이 같이 나누어 준 주례사를 일제히 낭독함으로써 하객 모두가 주례자가 된다. 그리고 합창이 이어지고 재즈공연과 함께 신랑.신부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고, 즐거운 참여와 축제의 마당이 형성된다. 신관웅은 딸을 위한 '나라의 테마'라는 새로운 재즈곡을 직접 연주했다.

혼례에 관해서는 내가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이 이벤트에 관해서는 팸플릿이 많이 남았으므로 재즈바 문글로우(324-5105)에 연락해 보면 혹시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선의 열기도 좋지만 내가 갈망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순결한 아름다움이다.

도올 김용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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