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투자자, 급락 증시에 깊은 시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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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회사원 이형원(30)씨는 22일 게으른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지난주 목요일 지수가 2000선을 뚫었을 때 환매하려다 일이 밀려 시기를 놓쳤다. 금요일에는 시장이 떨어지기에 월요일 반등하면 팔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지난주 말 미국 증시 급락에 국내 시장은 개장하자마자 1900선을 고스란히 내줬다.

이씨는 100포인트를 오가는 시장이 불안하다. 그는 “당장 환매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지난번처럼 금방 2000선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결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수 급등락에 이래저래 펀드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잦은 투자와 환매는 비용만 부른다=그나마 이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씨가 펀드에 가입한 때는 2005년 봄. 적립식으로 투자했지만 수익률이 이미 100%를 육박한다. 100포인트 정도 빠져도 수익률은 여전히 높다.

문제는 증시가 2000선을 향해 달려갈 때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1800선일 때 펀드에 들어온 돈이 4조9631억원, 1900선에서 4조3329억원, 2000선에선 1조1789억원에 달한다. 펀드 투자로 은행 이자의 2∼3배 정도의 수익을 기대한다 쳐도 22일 종가(1903.81) 기준으로 10조원을 웃도는 자금이 5%에도 못 미치는 수익률(코스피지수 상승률을 펀드 수익률로 가정)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1900선 이후에 들어온 5조5000억원은 보수·수수료를 감안하면 오히려 원금을 까먹고 있다.

지수가 더 빠지기 전에, 혹은 반등하면 곧장 환매에 나서겠다는 욕구가 시장에 팽배하다. 그리고 시장이 진정되면 다시 가입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잦은 환매와 투자는 비용을 발생시킬 뿐이다. 예를 들어 지수 1800에서 1000만원을 투자한 뒤 1900에서 환매했다가 시장이 진정되는 걸 확인한 후 다시 1900에서 가입했다 치자. 펀드 수익률은 지수 상승률과 같고, 판매수수료(1%)만 있다고 가정해 보자. ‘투자→환매→다시 투자’하게 되면 투자 금액은 1035만원이 된다. 반면 1800선에서 투자한 뒤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그냥 묻어 둔다면 평가금액은 1045만원으로 불어난다.

◆“장세에 휩쓸리지 말아야”=펀드 투자에는 수수료·보수 같은 거래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단기 투자보다는 장기 투자가 적합하다. 전문가들은 투자 목적이 장기적으로 필요한 자금 마련이고 국내 증시의 장기 상승 추세를 믿는다면 시황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펀드평가사 제로인 허진영 과장은 “펀드 투자의 성격 자체가 3년 이상의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장세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금 손실이 우려된다면 부분 환매를 고려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삼성증권 김남수 연구원은 “1900선에서 들어온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끼면 2000선을 회복했을 때 일부 환매하고 추가 흐름을 보다가 다시 가입하는 방법으로 매수 단가를 조절해 나가는 것도 괜찮다”며 “환매나 투자나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분할해서 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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