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실적 전망에 투자심리 ‘냉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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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03면

“뉴욕 주식시장 참여자들은 올 3분기 기업 실적이 나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4분기 이후에는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기대가 깨졌다.”

美 증시 급락 이유

미국 증권사인 제퍼리스의 투자전략가 아트 호건은 지난 주말 뉴욕 월가의 주가 급락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고유가의 여파로 기업들의 실적이 예상보다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투자자들을 떨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19일 미 건설장비 업체인 캐터필러는 올 3분기 주당 순이익이 1.4달러라고 발표했다. 월가의 예상치인 1.43달러보다 약간 낮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4달러보다 좋았다. 하지만 주가는 5% 남짓 급락했다. 캐터필러의 주가는 올 들어 40%나 급등했었다. 중국 특수로 실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의 현대중공업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회사가 내놓은 4분기 이후 실적 전망은 어두웠다. “최근 50년 동안 겪어 보지 못한 주택시장 침체로 미 경제가 내년에 침체 수준에 이를 것”이라며 “(중국 등) 해외시장 호조에도 불구하고 4분기 이후 실적이 나쁠 수 있다”고 캐터필러는 밝혔다.

캐터필러의 경기 실적 전망은 순간 다른 악재와 맞물려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하루 전 발표된 소매업체 월마트의 실적이 악화됐고, 서브프라임 사태로 은행들이 투자를 줄이는 바람에 IBM의 3분기 판매가 저조하다는 사실이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치솟는 국제유가도 시장 참여자를 긴장시켰다. 19일 미국의 주간 원유 재고량이 넉넉하다는 소식에 마감 직전 내림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지난 한 주 유가는 90달러 선을 넘나들었다(위 그래프). 원유값이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가격 기준으로 기존 최고치인 1980년의 100달러에 육박하자 시장 참여자들은 당시 경기침체를 야기한 ‘오일 쇼크’를 떠올렸다.

미 달러 가치 하락도 계속 부담을 줬다. 유로(Euro)화 대비 달러 가치는 사상 최저치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아래 그래프). 시장 참여자들은 미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이점보다 최근 가속되고 있는 자본 이탈로 달러 가치가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 측면에 주목했다. 최근 한 달 새 1600억 달러 이상이 미국에서 빠져나갔다.

미 시카고의 투자자문사인 비앙코리서치의 투자전략가인 하워드 시몬스는 “마치 서브프라임 사태 2막이 오른 듯하다”며 “낙관적이던 투자자들이 순식간에 비관적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린 뒤 시장 참여자들은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1998년 롱텀캐피털 사태 직후 앨런 그린스펀 FRB 당시 의장이 금리 인하를 단행해 경기침체를 막았듯이 이번 벤 버냉키 의장의 금리 인하도 비슷한 효과를 낼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 이후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은 올 4분기 이후 기업 실적으로 쏠렸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좋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3분기 실적보다 이후 전망에 더 큰 기대를 건 것이다. 마침 4분기 기업 실적이 평균 10%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면서 주가는 꾸준히 올랐다. 그러나 캐터필러의 불길한 실적 전망을 계기로 투자자들이 ‘내 예상이 틀린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듯하다.

전문가들은 뉴욕 증시의 투자심리 불안이 일단 2주 정도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31일 FRB의 정례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리고 3분기 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3분기 미 경제 실상과 FOMC의 금리정책을 확인한 뒤에야 투자 방향을 다시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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