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리스크, 긴 그림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호 18면

부쩍 쌀쌀해진 날씨만큼이나 증시에도 갑자기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수 2000 봉우리 위로는 다시 짙은 안개가 덮여 앞길을 가늠하기 힘들다.

지금 한국 증시를 괴롭히는 변수 중 하나는 바로 중국이다. 중국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무슨 얘기인가. 지나친 자금 쏠림이 화근이다. 최근 중국·홍콩 증시는 한국 투자자들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하루 3000억∼4000억원의 돈이 중국 펀드로 몰리고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해진 가운데 중국펀드로 갈아타기 위한 환매 요구가 일고 있다. 국내 투신운용사들은 돈줄이 말라가자 주식을 잇따라 처분하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다시 한국 증시를 때리고 있다. 10월 들어 잠깐 매수 대열에 가담하는 듯했던 외국인들은 지난주 내내 매물을 쏟아냈다. 미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와 이를 진화하기 위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 조치 이후 글로벌 투자자금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서 빠져나와 신흥시장으로 꾸준히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시장은 외면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를 더 이상 신흥시장으로 보지 않기 때문일 게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를 신흥시장과는 성격이 다른 선진국형 시장으로 인식하는 추세”라며 “미국 경기가 나쁠 것으로 예상하면 미국 주식과 함께 한국 주식도 거의 자동으로 내다판다”고 설명했다. 요즘 글로벌 증시의 화두인 ‘신흥시장과 선진시장 간 디커플링(비동조화)’에서 한국시장은 왜 예외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한국 증시는 당분간 중국보다 미국 증시와 흐름을 같이할 공산이 크다 하겠다.

이런 면에서 지난 주말 미국 증시의 급락은 이번 주 국내 증시에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지금 미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은 다시 증폭되고 있다. 경기침체 쓰나미를 막아줄 방파제로 여겨졌던 FRB의 추가 금리 인하 카드가 과연 작동할지 의구심을 갖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고유가와 약달러, 그리고 중국발 물가상승 압력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에 빠진다면 중국·인도 등 어느 신흥시장도 온전할 리 없다.

기회 요인보다 위험 요인이 다시 부각되는 상황이다. 주식형 자산(해외펀드 포함)의 비중이 너무 큰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요즘 증권사들의 한쪽 창구에선 만기 3∼6개월짜리 신탁형 상품이 인기라고 한다. 최근 실세 금리의 상승을 반영해 수익률이 연 6∼7%에 달하면서 이를 찾는 큰손 고객이 부쩍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전히 50% 이상의 대박 수익 환상에 푹 빠져, 뛰는 주식과 펀드만 좇는 투자자들과 대조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