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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형씨, 당신 만화 돌연변이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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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이렇게 하면 미국시장에 먹힐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근데 준비기간이 길어질수록 결국은 제가 하던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 독자들이 반갑게 봐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죠."

미국시장을 겨냥한 신작만화 '스틸 섀도'(가제)를 준비 중인 만화가 형민우(31)씨의 말이다. 형씨는 최근 스틸 섀도에 들어갈 캐릭터들의 일러스트 모음집을 '저스티스 앤 머시(시공사.1만8천원)'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만화 자체는 오는 7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에나 국내에서 선뵐 예정이기 때문에 이 일러스트북은 국내 팬들을 위한 일종의 맛보기인 셈이다.


이 만화에는 미래사회를 무대로 동서양의 스타일을 뒤섞은 7명의 킬러가 등장한다.

다른 산업분야와 마찬가지로 내수시장의 어려움을 해외 진출로 타계해 보려는 최근 만화계의 움직임에서 그는 지금 선두에 서있다. 국내 만화잡지에 벌써 5년째 연재 중인 만화 '프리스트'(대원씨아이.14권까지 발간)는 미국.일본.유럽.동남아 등에 두루 번역됐고, 그 중 미국시장에서는 2만부가량이 팔리는 호평을 받았다. '프리스트'는 미국의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신에게 대항하는 천사가 이끄는 세력과 또 다른 이단자의 대결을 그리는 내용. 성경에서 모티브를 따온 장중한 대결구도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 화려한 그림체가 국내외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굳이 뿌리를 따지고 들자면 어릴 때부터 '코난'같은 미국만화를 많이 봤어요. 미국에 사는 고모들이 만화책을 많이 보내줬어요.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시골 여기저기서 살다보니까 한국만화보다 그런 미국만화가 가장 접하기 쉬운 오락물이었죠. 미국에서 자란 게 아니니까 미국정서를 갖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되고, 그런 정서가 그냥 자연스레 스며든 것 같아요. 나중에 일본만화도 보고, 영화나 소설도 보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변종'이 제 취향이 된 거죠."

시공사가 미국에 설립한 스튜디오아이스에서 펴내게 될 '스틸 섀도' 역시 변종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기업의 지배가 중앙정부의 권력을 대체하게 된 가까운 미래가 무대다. 그 세계 한곁에 광신도들이 사는 일종의 자치구가 존재하는데, 외부에서는 끊임없이 킬러들을 보내 광신도 집단의 우두머리를 해치우려고 한다는 설정이다. SF분위기의 이야기면서도 이 킬러들은 동양의 무사처럼 주로 칼을 휘두른다. 이런 식의 상상력을 펼치기에 사실 만화만큼 자유로운 장르도 없다.

"미래도, 현재도 아닌 제3의 공간에 항상 관심이 있어요. 몽환적이면서도 모호한 곳이라면 고증에 신경쓸 필요가 없고, 배경이 혼란스러우면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쉽죠. 평범한 일상에서 재미를 꺼내는 게, 영화라면 몰라도 만화는 쉽지 않거든요."

철저히 '만화적인 재미'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한다는 설명이다. 독자들 사이에 그가 혹 기독교적 구원의 문제에 심취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곧잘 불러일으키는 '프리스트'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가진 신화적인 부분을 좋아해요. 타락한 천사가 신과 대결한다는 얘기 같은 게 마치 그리스 신화처럼 재미있잖아요. 캐릭터의 갈등구조도 뚜렷하고요."

그의 외모도 만화 못지않게 잘못된 추측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짧게 깎은 머리에다 지난해 새로 한 문신까지 드러나면 언뜻 '조폭'같다. "이거요. 일종의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인물의 차림새를 흉내내는 놀이)예요. 무슨 작품이냐고요? 하하…그런 거 없고요. 그냥 농담인데…."

그랬다. 만화는 오락이다. 오락물의 생산자답게 그는 유쾌했다. 안 그래도 귀한 대접 못받는 장르인 만화에서도 변종취향으로 꼽히는 '프리스트'로 대한민국 만화대상 신인상(1999년), 오늘의 우리만화상(2002년)을 휩쓴 그다. 그는 인터뷰 첫머리에 했던 "미국 독자들 비위를 맞추려고 일부러 애쓰지는 않겠다"는 말을 다시했다.

이후남 기자<hoon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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