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이어진 역대 선거공약들] '1道 1生保社' 대부분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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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국민의 정부는 "2004년까지 새로운 일자리를 2백만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4월에는 16대 총선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2003년 말 현재 취업자수는 2천2백14만명으로 2000년에 비해 1백만명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오히려 일자리가 3만개 감소했다. 현재 청년 실업률은 8.6%에 달한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인기 영합 정책과 공약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이 같은 정책들은 대부분 실패했거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두고두고 부담이 되거나 정권의 골칫거리가 된 사례가 많다.

이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표를 통한 유권자들의 냉정한 심판이야말로 무리한 선심성 정책의 남발을 막고 정치의 구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실패로 점철된 인기 영합 정책들=1992년 12월 대선에서 당시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쌀 시장 개방만은 막겠다"고 공약했다. 쌀 시장이 열리면 '다 죽는다'는 위기 의식에 휩싸인 농심(農心)을 의식한 공약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무작정 공약'은 그 후 '개방은 무조건 안 된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농민들에게 '무리한 기대'를 갖게 했다. 올해 다시 시작된 쌀 시장 개방 협상도 이 덫에서 벗어나는 게 첫째 과제다. 개방을 미루면 그만큼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표심만을 좇은 결과다.

87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여야 후보들은 일제히 낙후한 전북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공약으로 '새만금 간척'을 주장했다.

특히 91년 7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영수회담 후 추경예산을 통해 2백억원이 전격 반영돼 같은 해 11월 사업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들은 "중간평가를 하지 않는 대가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야당이 받은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충분한 사회적인 합의나 정책적 검토 없이 정략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은 환경 파괴 논란으로 공사중단.재개 등을 되풀이하며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사회적 갈등만 키웠다. 2년간의 사업 중단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손실만 1조7천억원에 이른다.

청주에 국제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84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 발표됐다. 그러나 사업성이 문제가 돼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87년 12월 대통령선거 유세 도중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청주 신공항을 임기 중에 완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다 죽어가던 국책사업이 지역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급작스럽게 살아난 것이다. 청주공항은 그 후 아홉차례나 건설계획이 바뀐 끝에 8백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어 97년 완공했지만 여전히 이용실적이 지지부진하다.

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는 각 도에 1개사씩 생명보험사를 설립해 주겠다고 공약했다. 그후 우후죽순처럼 생긴 생보사들은 대부분 부실화됐다. 부실 생보사를 정리하는 과정에 대규모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정책 실패의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메운 셈이다.

◇2000년 4월 총선=16대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부의 정책도 대부분 흐지부지됐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200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재정수지(일반회계)는 지난해까지 6년째 적자를 면치 못했다.

글로벌 중소기업을 1백개 양성하고 전국 20개 지역을 벤처기업 육성 촉진지구로 지정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중소기업 육성과 고용 촉진을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현된 것은 없다.

◇유권자의 힘 보여 줘야=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유권자들이 정책.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표를 주다 보니 선거 때마다 무리한 정책.공약이 횡행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선거를 의식한 왜곡된 정책을 막으려면 정책실명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책의 입안자가 누구인지 등을 공개해 무책임한 정책이 양산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안종범(성균관대)교수는 "사후에 정책의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절차가 없기 때문에 인기 영합 정책들이 선거를 앞두고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종윤.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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