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미술 흐름과 호흡하는 ‘도전적 전시’ 새 장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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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의 낮(1)과 밤(3). 가운데 사진(2)은 미술관 앞 조각정원에 설치돼 있는 프랑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앞), ‘스파이더’(뒤). [사진제공=리움]

42만명. 13일로 개관 3주년을 맞는 삼성미술관 리움을 다녀간 사람 수다. 인기 작가 위주로 기획사가 꾸리는 블록버스터 전시의 관람객 수가 30만명 내외를 기록하는 것에 비하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바로 리움의 전시가 갖는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보여주고 있다.

리움의 주요 기획전을 보자. ‘이중섭 드로잉: 그리움의 편린들’에는 100여점의 이중섭 작품이 나와 리움의 튼실한 한국 근대 작가 컬렉션을 드러냈다. 개관 1주년을 맞아 마련한 ‘매튜 바니: 구속의 드로잉’은 서구 미술계에서 화제가 되는 미국의 영상설치작가 매튜 바니의 첫 내한전이었다. 지난해엔 명상적 분위기의 미니멀 회화로 유명한 ‘마크 로스코전’을 열었다. 올들어서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작품 205점이 나온 20주기 회고전을 내세웠다.

관객몰이를 위한 쉽고 대중적인 전시라고 할 수는 없다. 이에 이준 부관장은 “할리우드 영화가 인기가 높다고 해서 그게 영화의 지향점은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리움은 세계 미술의 조류를 소개하며 미의식을 리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람객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전시 선호도 조사 역시 선도적 전시에 대한 목마름을 보여준다. 현대미술관 관람객들은 ‘국제미술의 현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50.4%),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전시’(36.1%)를 선호한다고 복수 응답했다. 유명 블록버스터급 전시에 대한 선호도는 22.1%에 그쳤다. 리움의 자리매김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 프랑스의 장 누벨,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등 당대의 거장 3인이 설계한 미술관 건물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리움은 해외 작가·미술관 관계자 등이 들러야 할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아시아에서는 드믈게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공존하는 미술관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이 때문에 해외 유수의 미술관 중 미국의 게티미술관에 비견 된다.

이 부관장은 “‘보석같다’는 찬사를 들었던 건물,고대 그리스부터 모네·세잔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친 컬렉션을 자랑하는 게티미술관이 이미지상 비슷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기획전 뿐 아니라 교육 기능 강화 등 내실화에도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근영 기자

 
◆게티미술관=세계 최대의 사설 미술수집 재단인 게티 재단이 1997년 미국 L.A.에 설립한 미술관. 80에이커(10만평) 대지에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6개의 건물군이 자리잡고 있다. 시초는 미국의 석유재벌 장 폴 게티(1892~1976)가 L.A. 말리브 자택에 미술관을 연 것이었다. 이를 기려 지난해엔 말리브에 그리스·로마 시대의 고미술품을 중심으로 한 게티 빌라도 재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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