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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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3.실종 ○19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는데,나는 오전수업이 끝나자마자 써니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매점의 공중전화기 앞에서 나는 심호흡을 한번 길게 한 다음에 전화번호를 돌렸다.오전 내내조마조마한 심사로 한 시간 한 시간을 보냈던 거였다.남한강에서발견된 시체가 써니일 리는 없지만…그렇게 싱싱하고 예쁜 여자의몸뚱이가 죽어서 아무렇게나 경찰보호소 같은 데에서 뒹굴고 있을리가 없지만….
써니엄마를 찾아갔다가「헤븐스 도어」에서 나오는데,짧은 치마에탤런트처럼 예쁘게 꾸민 여자들이 복도에 서있다가 나를 놀렸었다.아빨 찾으러 왔니 어쩌구 하면서.나는 얼굴이 빨개졌지만,막연히 무슨 생각이 스쳐갔느냐 하면,그 여자들과 주 검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였다.그녀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주고 있는 대가를 세상에 청구하면서 사는 여자들이었다.그러니 그녀들보다 훨씬 더 예쁘고 싱그러운 써니가 스스로 주검으로 변했을 리는 없었다.
띠이이…띠이이…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저 달순데요….』 차악 가라앉은 써니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이렇게만 말하고 기다렸다.나는 어떤 말도 더 할수가 없었다.
『그래,새벽에 양평에 다녀왔는데…아니었어.어쨌든 아주 끔찍했어.』 써니엄마는 말하는데 몹시 힘들어 하는 것같았다.나는 써니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우리도 열심히 수소문하고 있어요.』 그날 밤,우리 악동들과 써니네 친구들은 약수동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써니가 1학년 때 알고 지냈다는 준식이라는 자를 만나기위해서였다.재벌 아들 대학생하고 동거를 한다는 소문은 준식이라는 녀석 때문에 나온 말일 거였다.아니 땐 굴뚝에 어쩌구 하면서 상원이가 그놈을 일단 족쳐보자구 강력하게 주장한 결과였다.
써니와 사귈 때는 3학년이었는데 지금은 대학생이 돼 있다고 했다.다행히 양아가 약수동의 준식이네 집을 알고 있었다.사는 집으로 봐서는 재벌 2세니 하는 건 과장된 소문인 것같았다.
『온다 와.저기 안경쓰고 오는 사람 있지.』 약수동 시장으로가는 길 모퉁이의 분식집에 앉아서 죽치고 있는데 양아가 법석을떨었다.계획한대로 상원이가 잠깐 할 말이 있다면서 인적이 드문골목길로 안경을 끌고 갔고,뒤이어서 영석이와 내가 몰려갔다.
『이 사람 이거 좆나 답답하네.사실대로만 말해달라니까….』 상원이가 일부러 양아치처럼 굴고 있었다.준식은 약간 겁먹은 표정을 하고 안경을 고쳐 쓰는 모습이 전형적인 모범생 타입이었다. 내가 끼어들었다.
『미안한데요,선희가 행방불명이 됐거든요.소문으로는 어떤 대학생하고 동거를 한다길래…혹시 하고 온 거예요.경찰에도 신고를 했구요.』 『선희하고는 3학년 2학기 때부터는 못봤는데…정말 난…그 다음엔 모르는데…선희도 연락이 없었구….』 『어떤 사이였는데?』 상원이가 윽박지르자 준식이 안경을 한번 더 추슬렀다. 『글쎄…선흰 아주 좋은 애였지만…우린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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