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10일부터 공연 재개하는 '에쿠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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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막이 오른 연극'에쿠우스'의 무대는 큼지막했다. 옆 사람과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보는 소극장 무대가 아니었다. 4백32석인 동숭홀은 대학로 소극장 규모의 서너배에 달했다. 객석에는 30~50대 관객도 적잖이 보였다. 한번쯤은 서울 운니동 실험극장에서 '에쿠우스'를 봤을 사람들이다. 그 때의 충격과 감흥을 잊지 못해 다시 '에쿠우스'를 찾은 이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큰 무대를 지켜봤다.

역시 '에쿠우스'는 '에쿠우스'였다. 무대는 뜨거웠고,객석에는 긴장감이 넘쳤다. 불혹을 내다보는 나이에도 조재현의 연기는 파릇파릇했다. 동그란 눈매와 짧게 끊어치는 말투는 영락없이 그를 열일곱살의 알런으로 되돌렸다. 13년 만에 다시 맡은 역이지만 서먹함은 없었다. 얼음장 같은 대사를 조목조목 짚어내는 김흥기(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의 냉철한 연기도 돋보였다.

화두는 역시 무대였다. 널찍한 무대는 이번 공연의 '무기'이자 '족쇄'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무대의 입체감. 앞에 놓인 주무대는 '감성과 현실'을, 뒤편의 보조무대는 '이성과 지향'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소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깊숙한 입체감이었다. 알런의 내면을 비디오카메라로 보여준 대목과 물레방아처럼 빙빙 돌아가는 무대의 역동성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먼 것이 흠이었다. 뒤쪽에 앉으면 대사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라도 나면 무대의 대사가 덮일 정도였다.

또 넓은 공간을 꽉 채워야 하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알런과 말들이 펼치는 클라이맥스는 일면 순서가 착착 짜인 뮤지컬 안무를 연상케 했다. 원시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에쿠우스'는 피가 비치는 생고기이지, 잘 구운 스테이크가 아니기에 아쉬웠다. 10일부터 공연 재개. 뇌출혈로 쓰러진 김흥기 대신 이승호가 무대에 선다. 02-762-0010.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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