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한국의사들은 잘 산다던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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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金日成장례식이 치러진 19일.
황급히 돌아가는 동생을 보내는 延邊조선족 李모 할머니(65)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의사이자 노동당원인 동생(50)이 며칠전 식량을 구하러 왔다가 20일에 거행되는 추도행사만이라도 참석하기 위해 급히 되돌아간 것이다.
3년만에 한번 나올수 있는 15일간의 친족방문을 채우지 못하고 가는 바람에 잘 먹이지도 못하고 그가 원하는 식량도 충분히마련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동생은 북한에서 의사로서 생활이 보장되지만 최근 식량사정이 나빠지며 4명의 자식을 굶기게 되자 뭐든 팔아 식량을 마련하려고 며칠전 러시아제 오토바이를 끌고 왔다.
그러나 연변에 도착한 동생은 모처럼 배불리 먹다 배탈이 나 누워있다가 돌아갔다.
중국의 親北韓교포조직인 朝橋들이「자발적」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라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가 팔려고 가져온 오토바이도 처분할 시간이 없었다.
李씨 할머니는 자신도 넉넉치 않지만 옷가지며 생필품과 식량을서둘러 한짐 마련해 주었다.
동생은 누나집에 머무는 동안 식량을 구해달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옥수수며 조등 여러가지를 보따리에 넣어 주었으나 동생은 무겁다는 말 한마디 없이 멋적은 목례와 눈인사를 하며 떠났다. 북한에 친척을 둔 이곳 조선족들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사정은 최근 최악이다.
북한을 다녀온 延邊의 보따리장수들은『북조선엔 지난 6개월동안식량배급이 끊겨 야매(암)시장에서 사먹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암시장 물가는 너무 비싸 월급으로는 끼니를 잇기 힘들다고 한다.며칠전 북한을 다녀온 한 보따리장수도『장례식 때문에외부 왕래가 끊겨 생필품 값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랐다』고 전했다. 이런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李할머니.얼마되지도 않은식량보따리를 메고 힘없이 국경을 넘어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편할 수 없다.
李할머니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들에게『韓國에서는 의사들이 잘 산다던데…』라며 말끝을 흐리다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三合(中國 吉林省)=崔相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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