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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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37) 창밖을 내다보고있는 명국의 옆으로 이시다가 다가서며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지요.』 『그렇군요.』 『이런 날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를 전 제일 좋아한답니다.바다빛깔이 얼마나 좋아요.』 이시다가 마치 바닷바람을 들이마시기라도 하듯 옆의자에앉으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무슨 말로 또 날 위로하기라도 할모양이군.말없이 명국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시다상.』 이시다가 고개를 돌리며 명국을 바라보았다.
『하나 늘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뭐가요?』 『일본사람들 말입니다.왜 그렇게 날씨 이야기를 하나 모르겠어요.아침이면 늘 그러지 않습니까.날씨 좋습니다 하거나,비가 올 거 같네요 하거나.』 『그게 뭐 이상한가요? 조선사람은 그런 인사를 안 하나요?』 『우린…진지잡수셨습니까 하거나,밤새 안녕하셨냐고 묻지요.』 이시다가 낮게 웃었다.
『그래서,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지요.하룻밤 무사하기도 어려운 세상을 살다 보니 그런 인사가 나온 게 아니냐구요.』 『그럼,밥먹는 건 왜 물어요?』 『그건 또 워낙 못 살다 보니 그렇다나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시다가 말했다.
『슬픈 이야기네요.』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못 먹고,사연 많은 세상을 살았다고 해도,조선사람만큼 또 흥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무슨 일만 있으면 그저 어깨춤이 덩실덩실이지.
막막하게 바다를 바라보다가 명국이 말했다.
『하늘만 보다가 마는가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이시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워 있자면 하늘밖에 보이는 게 없지요.창문으로 보이는 게말입니다.그래서 늘 생각했지요.언제 일어나서 땅도 보고 바다도보나 하고 말입니다.』 『보기만 할까요.이제 땅도 밟고 물에도들어가고 하실 텐데요.』 『그런 세월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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