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聖地 언제나 바로갈까-손기정옹 백두산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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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백두산은 분명히 우리민족의 聖地인데 왜 중국으로 돌아서 올라가야만 하는지 답답해.언제 통일이 돼 개성과 평양을 거쳐 오를 수 있게될지….』 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한국마라톤의 전설」孫基禎옹(82)이 백두산에 올랐다.
孫옹은 원로산악인 白南鴻(81).李基燮(81)옹과 함께 지난3일 서울을 출발,중국의 천진과 길림을 거쳐 5일 백두산 정상천지에 도착했다.
孫옹의 이번 백두산 산행은 李仁禎 대한대학산악연맹회장이 북한이 고향인 이들 세사람이 중국쪽을 통해서나마 북한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여행기회를 마련해 이뤄진 것.
『내 고향이 평안북도 신의주 압록강변이여.해방직후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가봤으니까 벌써 50년이 다 됐구먼.당장 통일이 되지 않는한 이번이 백두산에 오르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건강때문에 주위에서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다녀왔어 .』 58년전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했던 孫옹이지만 고령으로 높은 산을 등반하는 것은 어렵고 비바람이 몰아치는등 날씨마저 좋지 않아 차편으로 천지에 올랐다.
孫옹과 동행한 한국산악계의 원로 白옹은 꼭 50년전 백두산에오른후 반세기만에 다시 천지에 올랐으나 해방전 금강산에 올랐던孫옹에게는 백두산은 이번이 초행.
어렵사리 찾아간 백두산이었지만 정상에는 사람이 날아갈만큼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안개가 끼어 천지를 제대로 구경하기도 어려워 가뜩이나 착잡한 세 원로는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래도 백두산에 올랐다고 생각하니 자꾸 고향생각이 나더군.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속에 혼자서 배를 곯아가며 무조건달리기 연습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그때는 뭐 지금처럼 과학적인 훈련을 하나.그저 언덕을 오르내리며 가 슴이 터지도록달리는 것이 전부지.』 孫옹은 북쪽에 살고 있을 조카들과 어릴적 함께 냉면을 나눠먹던 친구들을 생전에 다시 한번 만나보는 것이 소원이다.
돌아오는 길에 중국땅 도문에서 두만강 너머의 북녘땅을 바라볼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孫옹에게는 위안이 됐다.
8일 귀국한 孫옹은 다음날 金日成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金日成이 1912년 壬子생으로 나하고 동갑이여.주위사람들이전에 농담으로「 孫선생님이 金日成을 만나 평양소주와 남한소주를나눠마시며 얘기를 나누면 통일이 앞당겨질텐데」하고 얘기하곤 했었는데 金日成이 먼저 떠났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남달리 컸던 孫옹은 「結者解之」를 하지 못하고 먼저 떠난 金日成의 죽음이 아쉽다고 했다.『90년 아시안게임에 갔다온후 4년만에 다시 가보니 중국도 크게 달라져 있더군.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은 것이 개방후 변화되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야.북쪽도 개방을 하면 금세 그렇게 좋아질 수 있을텐데….』 孫옹은 아직도 16세때 달리기 연습을 하던 압록강변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尹碩浚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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