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평등 아직 멀었다-정부2장관실서 주부 510명 조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사랑을 기반으로 신뢰와 우정을 창출한다.서로 존경하고 친밀하며 경제권을 포함한 생활의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나눈다.상호관계에 관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주고 받는다.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가장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대화에 많은 시간 을 보낸다.갈등 해결을 힘에 의존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을 분명히 밝힌후 그것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타협한다.』 이상은 제2정무장관실이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5월13~14일 「평등한 부부에 대한 전문가 대토론회」에서 도출한「평등한 부부」의필요.충분 조건이다.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제2정무장관실이 지난 6월20일부터 7월16일까지 각계 1천명(5백10명 응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당수의 응답자들이 주요 문제의 결정권을 남편이 갖고 있다고 말하는등 교과서적인「부부의 평등」과 실생활이 동떨어진 것으로 드러 났다.
우선 오늘날 한국 부부가 평등의 최우선 조건으로 꼽고 있는 사항은「의사소통과 의사결정」문제.보통때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상호 의견을 교환하고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상대방 의견이 참작돼야 평등을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83.1%가 가정에서 주요 문제의 결정권은 남편이 행사한다고 밝힘으로써 아내,말하자면 여성의 의견이 끼여들 여지가 제한돼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가사노동과 자녀양육.교육분담 측면에서도 각각 80%와 6 6.3%가 불평등하다고 응답,부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분석됐다.
「가정내 경제관리의 영향력 행사자」를 묻는 설문엔「아내에게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72.7%에 달했는데 이는 단순히 소비차원에 불과할뿐 부동산의 공동소유등을 의미하는 명실상부한 수준이 아니어서 가사경제의 실질적인 영향력 또한 평 등성에 한계가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밖에 부부의 심리적.정서적 유대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평등의 요소는 배우자의 걱정거리와 느낌에 대한 관심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부부 성격차이▲가정의 경제적 안정▲아내의 취업여부등도 부부평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 됐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러한 불평등의 가장 큰 요인으로 성차별 의식을 지목하고 있다.남성과 여성은 엄연히 다르다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부부의 평등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법령등 여러 사회제도도 이러한 현상을 부채질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여성의 가사노동이 세법등에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남편의 재산을 부인에게 이전하면 증여세를 물게되는 경우를 비롯,가정생활과는 양립이 곤란한 취업조 건등 부부의평등을 해치는 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또 부부가 평등하다는 사실과 가정이 화목하다는 점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정서적인 만족을 고려할때 부부가 평등하다면 서로의 관계가 원만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지만 평등하기 때문에 갈등과 불화가 잦을 수 있다는 것.
제2정무장관실은 이같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오는 9월 부산.
광주.서울에서 평등한 부부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향후 평등한 부부를 선정,시상함으로써 남편과 아내가평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사회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金明煥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