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함께>千의 얼굴 고두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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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SBS-TV 「박봉숙 변호사」를 본 한 30대 주부가 미장원엘 갔다.머리모양을 고두심 스타일로 해줄 것을 요구하자 미용사는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떡였다.잠시후 머리 손질이 끝나고 거울을 본 주부는 기겁하고 말았다.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전원일기」의 영남엄마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5년전「사랑의 굴레」에서 히스테리컬한 성격장애자로 열연하던 고두심을 소재로 해 회자됐던 유머를 각색한 것이지만 그 재미는아직도 유효한 것같다.
그것은 아마도 순박한 몸뻬에서부터 지적이고 세련된 양장차림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녀의 탁월한 연기력 탓이리라.고두심을 말할때 흔히들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라는 표현을 쓴다.
무색의 이미지로 배역을 받아 때로는 화려한 유채색으로,때로는무채색의 담백함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낸다는 것 또한 그녀에대한 방송가의 평이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조금 다르다.
『양극적인 인물 사이를 어쩌면 그렇게 쉽게 넘나들수 있느냐는말을 들으면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변신을 위해 쏟는 노력을 몰라주는 것같아 속상할 때도 있어요.』 그녀는십수년동안 계속해온「전원일기」지만 지금도 녹화가 있는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시골 아낙이 된 기분으로 모든 행동을 하고화장도 하지않은 그야말로 영남엄마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고 말했다. 새로운 배역을 위한 변신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보면 때론엉뚱한 실수가 나오기도 한단다.
『MBC주말연속극 「산너머 저쪽」을 촬영한 다음날 「전원일기」녹화 때였어요.영남아빠인 김용건씨를「산너머 저쪽」의 한진희씨로 착각해 별이 아빠라고 불렀지 뭐예요.스태프로부터 「10년 같이 산 서방보다 엊그제 꿰찬 서방이 그렇게 좋으 냐」는 놀림을 받았지요.』 그같은 변신 노력은 「박봉숙 변호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국내 최초로 여변호사를 주인공으로한 법정드라마 배역이 정해지면서부터 고두심은 변호사 박봉숙이 되기 위해『펠리컨 브리프』『재미있는 법률여행』등 법관련 서적 10여권을 읽고『아버지의 이름으로』『필라델피아』등 법정영화를 보며「변호사 공 부」를 했다. 『법정에서 재판과정도 수차례 지켜봤고 여성변호사들과도 만나법조인 분위기도 배웠지만 생소한 법률용어가 아직도 어려워요.
11명의 변호사 자문위원들로부터 조언을 받고있지만 뜻을 정확히 이해못하고 하는 대사도 간혹 있구요.이를테면 각하와 기각의차이같은 것 말예요.』 그녀는 촬영도중 풀어써도 무방한 용어는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서라도 쉬운 우리말로 대체할것을 주장해 관철시킬 때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및 소외계층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민권변호사 역을 하고있는 그녀지만 조만간 자신을 변호할 진짜 변호사를 구해야할 판이다.드라마로 나간「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의 장본인인 교수가서울방송.대본작가와 함께 그녀를 명예훼손으로 고 소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어요.자신이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연기자를 걸고 넘어지는것은 지나친 것 아녜요.』 아무튼 그녀는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그랬듯 「박봉숙 변호사」에 승부를 걸고있다.
지금도 몇군데서 출연 섭외가 들어오고 있지만 작품이 끝나기전에는 아무것도 맡지않을 작정이다.
『지방 시청자들이 볼수 없는 것이 제일 안타까워요.새로운 모습의 고두심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말예요.』 모교인제주여고에 장학금 1억원을 전달하러 20일 제주에 갔을때도 고향사람들이 자신을 박봉숙 변호사로 불러주지 않고 여전히 회장댁맏며느리로만 알고있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그러나 개인적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싶은 마음은 들지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李勳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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