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한글을 국가 브랜드로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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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즘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이 의상이나 가전제품 휴대전화 등에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서 이상봉씨가 선보인 필기체의 한글 디자인 의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디자인은 LG전자에서 출시한 휴대전화에 적용되어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휴대전화의 뒷면에 새긴 샤인폰은 출시 2주 만에 영국에서만 20만 대가 팔렸다. 최근에는 가전제품에도 손 글씨(캘리그래피)로 쓴 한글 작품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소위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라고 하는 ‘테카르트’(Tech+ Art) 마케팅의 새로운 경향이다.

한글이 조형미와 예술성으로 세계 문화상품 시장과 디자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렌은 “한글은 현대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며 한글 패션화의 성공 가능성을 점쳤다. 이제 한글은 서예, 서각, 전각, 도자기, 의상, 넥타이, 스카프, 가방, 지갑 등 액세서리와 패션 소품, 티셔츠, 생활용품, 휴대전화, 가전제품 등의 디자인에 적용돼 생활과 산업의 제반 분야에서 조용한 디자인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4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 스타일 전시회‘를 참관한 일본인들은 한글을 이용해 다양한 예술작품과 문화상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구매할 수 있는지 문의한 사람도 많았다.

한글은 완성형 문자 수가 1만1172자로 현존하는 언어 중에서 가장 많은 문자 수를 조합해 낸다. 음절형 문자 수로는 알파벳의 26자, 일본어의 104자보다 월등히 많다. 이는 디자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재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1만 자가 넘는 완성형 문자에다 다양한 글꼴을 개발하고 색상, 크기, 명암, 굵기, 기울기 등을 변용한다면 수천억 개에 달하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세계적 명품인 펜디, 구찌, 페라가모의 디자인 문양은 영문자 몇 개를 변형해 만든 것이다. 이에 비해 한글은 훨씬 다양하고 심미성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한글 하나만을 소재로 삼고서도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들이 여러 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한글이 우리에게 주는 디자인의 블루 오션이며 테카르트 마케팅의 새로운 개척지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Design, or resign(디자인하라, 아니면 사임하라)”이라는 말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갈파한 적이 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응용한 디자인은 다양한 생활용품과 산업제품에 적용되어 부가가치를 높이고 제품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태생적으로 현대적이고 조형미가 있는 한글은 우리의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다. 한글이라는 강력한 디자인 소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이 분야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 신수종 사업으로 키워야 할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순위(세계 13위)에 비해 뒤떨어지는 국가 브랜드 순위(세계 25위)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 이미지가 빈약해서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 결과 한글은 과학성·독창성·합리성에서 현존하는 전 세계 문자 중 1위로 판명났다. 이에 더해 예술성까지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면 한글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문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한글 디자인을 장려해야 하는 이유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많이 늘고 있다. 쉽게 배우고 익히는 한글이면서도 아름답고 디자인적 감수성이 풍부한 한글의 이미지를 그들에게 전달한다면 한글은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면 한글은 ‘한류의 쌀’이라 말할 수 있다. 한류의 핵심 소재로서 한글이 한류와 함께 세계 곳곳에 전파되어 ‘홍익한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