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논술의힘]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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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처럼 커다란 배가 빙산에 부딪혔다고 가정하자. 승객들의 살아남으려는 이기적 생존본능 때문에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야기될 것이다. 이때 힘 있는 자가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평하게 규칙을 정해 조난 작업을 지휘한다면 승객들은 기꺼이 그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고 자발적으로 통제와 명령에 따를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홉스(1588~1679)는 이 힘 있는 자를 절대 권력, 즉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 불렀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무적의 수중괴물이다. 홉스는 청교도 혁명이 한창이던 1651년 『리바이어던』이란 책을 펴내면서 이 괴물을 교회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에 비유했다.

 청교도 혁명은 1642년 영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으로 찰스 1세(1600~ 1649)의 절대주의 강화를 둘러싸고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벌어진 내란이다. 피를 부르는 내전은 영국을 생존투쟁을 위한 정글 상태에 빠뜨렸다. 이 싸움을 어떻게 종식할 것인가가 홉스의 관심사였다.

 홉스의 답은 ‘계약’과 ‘동의’였다. 개인들이 자신의 욕구와 의지를 군주에게 위임하기로 계약하고, 자발적으로 통치에 따르면 된다는 것이다. 조난된 승객들이 스스로 힘 있는 자의 통제와 명령에 따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힘 있는 자가 곧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생기는 무질서를 평정하고, 인신 보호와 평화라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 낸 통치권으로서의 국가, 즉 리바이어던이다.

 

절대 권력을 위임받은 권력자를 표현한 '리바이어던' 출판 당시의 표지.

근대 시민사회의 성립과 정부 구성의 원리를 사회계약론 위에 세운 최초의 근대 정치 철학자로 평가되는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묵비권과 양심적인 병역거부권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두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는 국민의 안정과 보호를 보장하기 힘들며, 그럴 경우 국민과 통치자 사이에 맺은 ‘계약’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슈가 된 요즘 상황에서 되새겨볼 대목이다.

 이 책의 21장에서 홉스는 “통치자에 대한 백성의 의무는 통치자의 힘이 지속적으로 백성을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만 유지된다. 왜냐하면 자기 이외의 그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경우 자기를 보호할 선천적인 권리는 그 어떤 계약에 의해서도 폐기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홉스는 시민들에게 국가에 일방적으로 헌신하라고는 강요하지 않는다. 개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시민의 자연적인 권리라고 강조한다. 국가에 권리를 양도할 때 목숨을 지킬 권리마저 양도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국가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국민을 무시하고는 국가의 정당성을 세울 수 없다는 홉스의 주장은 국민의 위상을 높이고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주장대로 국가가 국민의 계약과 동의의 산물이라면, 국민은 국가에 일방적으로 충성하거나 무조건 거부할 게 아니라 무엇에 동의할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김보일(배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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