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홀쭉이와 뚱뚱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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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北韓 주석 金日成은 생전에『고깃국을 배불리 먹고 기와집에 사는 것이 우리 인민의 염원』,『쌀은 공산주의』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을 지켜보거나 추모하기 위해 19,20일 양일간 平壤시내에 운집한 인민들의 TV에 비친 모습은 金日成의염원과는 사뭇 달랐다.
광기 어린 행태가 절정을 이루면서 온통 울음과 땀으로 뒤범벅이 돼 초췌한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상당수주민들은 굶주린 모습이 역력해「홀쭉이」처럼 보였다.적어도 TV에 비춰진 모습은 그랬다.
우리에게「보릿고개」란 이미 옛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소득 증가에 따라 육류 소비량이 늘면서 이제는 쇠고기 값이 걱정이다.
반면 北韓은 고기는 커녕 곡식도 턱없이 부족하고,사료가 없어가축 사육이 제대로 안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등「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게다가 노동집약적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北韓에서는 주민들의 노동량이 南韓에 비해 상대적으 로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북한 주민들의 영양상태가 하필이면 金日成의 장례식을 계기로 전 세계에「生中繼」된것 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90년초부터 사회주의 붕괴와 더불어 시작된 北韓의 식량난은 외화부족으로 식량을 수입할 돈이 없는 데다 비료등이 모자라고 병충해와 냉해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의 경우 연간 곡물 수요량이 6백6만t인데 반해 생산량은 3백88만4천t,수입량은 1백9만t으로 2백80만t이 부족하게 돼 北韓정권 출범이후 최악의 식량난을 보였다.
金日成 사망직후 정권안정 차원에서 군사용 비축미를 주민들에게배급했다는 소문이 나도는 것 역시 이같은 사정을 잘 말해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협동농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농업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져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金日成은 지난 2월「사회주의 농촌 테제 발표 30주년」기념식에서『협동농장을 국영농장으로 전환하거나 농업연합기업소로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한다』고 밝혀 더욱 더 거꾸로 갔다.
金正日이 아버지처럼「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한다면 北韓주민들의 굶주림은 한층 심해질 것이고 그 결과 정권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는 추도장이나 장례식장에서 흘린 수많은 인민들의 눈물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인민들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먹이는 방안을 조속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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